<호세아서강해17>-누가 이런 일을 알겠느냐

  조회수 : 712    / 등록일 :    / 출처(저자) : 황석용목사 사랑하는교회



정상에 오르면서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설악산에서 휴가를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동해 바다와 어우러진 설악산의 빼어난 경치들이 탄성에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바로 이 설악산에서 배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히-야"라는 말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올라갈 때의 일입니다. ?어떤 분이 주변에 펼쳐지는 설악산을 보면서 연신 "히-야"를 연발했습니다. ?얼마나 그 말이 제 귓전에 아른거렸던지 지금도 때때로 "히-야"라는 말이 ?저의 입전에 맴돕니다.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산행으로 인해 아이들을 대리고 정상을 ?오른다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아쉽던 지요. 돌아오자마자 몇몇 교우들을 충동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저의 꾀임에 빠진 몇몇 교우들과 지난 가을 추석에 ?기어이 대청봉을 올랐습니다. 오색에서 새벽 5시에 출발을 해서 11시가 다 ?되서야 정상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오르는 동안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에서 바라볼 ?설악산의 모습이 제 눈앞을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상이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더욱더 힘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정상을 밟았을 ?때의 그 기분, 글쎄요 그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산행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그리고 땀흘린 수고 끝에 정상을 밟아 ?본 분이라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바로 이런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66개의 봉오리 중 호세아서라고 하는 정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16시간에 걸쳐서 호세아서와 씨름을 해 ?왔습니다. 약 4개월에 걸친 씨름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4개월 ?동안 이 호세아서라는 산에 오르시면서 어떤 것들을 보셨습니까?
저는 호세아라는 산에 오르면서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진하디 진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은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온통 불바다가 된 곳도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 나의 사랑이 바로 너를 위해서 불붙는 듯 하도다"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몰염치한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배은망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애를 ?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서로 평행선을 긋고 달리는 열차 길에 ?모습이 떠올라 이것과 비교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은혜를 저버린 이스라엘, 이것이 호세아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로부터 버림을 당한 분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곳곳에서 이런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진노하셨습니다. ?징계하시겠노라고 벌을 내리겠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노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 바로 이것이 ?호세아서의 대주제였습니다.
바로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고멜과 같은 음탕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을 살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호세아서를 살폈습니다. 이제 한 시간만 오르면 정상입니다. 자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질 호세아서의 정상을 미리 연상해 보면서 함께 오늘 본문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사실 이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왜 오늘 본문을 13:14절부터, 그것도 14절 하반절부터 설명을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제법 시간을 드려야 이 문제가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설명하는 일에 시간을 드리고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히 정상에 ?오르고자 합니다. 단지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 ?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