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긍정과 부정
주제 : 종교개혁,순종
자료원: 김남식목사 예장고신
성경본문: 마5:37
영어 시간에 긍정문과 부정문을 배운다. 이것이 언어의 기본이요 의사 전
달의 [키 포인트]며 제일 쉬운 말이다.
[예][아니오]는 자기의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다.
성경은 긍정할 것과 부정할 것의 두가지 문제를 기록하고 있다. [예스]냐
아니면 [노]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미지근한 상태에서 이 편에도 다리를 걸고 저쪽에도 귀를 기우리는 중심이
없는 생활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그러므로 긍정과 부정 발표의 신앙이 필요하다.
1. [아니오]
이것은 부정 표현의 대답이다. 이것을 잘못 [예]라고 하여 마음 속에서 고
민할 때가 많다.
죄와 부정 부패에 대하여 단호히 [노]하고 말할 수 있는 신앙 인격자가 되
어야 한다. 일제시 신사참배를 강요 당할 때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
부했다고 목사직 사퇴를 강요받았다. 순종하지 아니하자 일제는 평양노회로
하여금 주 목사의 목사직 파면을 지시하여 노회가 모여 이것을 결정할 때
[아니오]라고 외친 이는 우성옥 목사 한뿐이었다고 한다.
이 한마디의 [노]란 외침은 불의에 대한 항쟁의 깃발이다.
빌라도가 유대의 군중을 향해 [노]라고 한마디 하였던들 사도 신경에 낙인
이 찍히는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오]하는 대답만큼 힘든 답변은 없다 [아니오]할 수 있는데도 그만한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
충신들은 대개 [아니오]할 경우가 많았다. [아니오]하는 충고를 받아 드리
지 않은 국가나 단체는 발전이 없었다. [아니오]란 말은 적어도 자기를 버
리고 오직 주님을 위한 생활 가운데서 가능하다.
우리들은 친구들에게 [아니오]를 몇차례나 했나 생각해 보자. 주일날의 야
외에는 [아니오]라고 한 사람보다 [예]한 사람이 더 많다. 이 사회를 향하
여 [아니오]하는 사람보다 [예]하고 부정부패를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은 세상을 [아니오]로 표현하였고 하나님의 나라는 [예]로 표현하였
다. 주님은 자기를 [아니오]로 하나님을 [예]로 표현하였다. [아버지여 하
실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이 뜻대로 하옵소서]가 바로 그것이다.
[A.D. 레어드]는 [일에 성공하기를 위해서는 눈 앞에 대롱거리는 이익과
[노]라고 할 수 있는 굳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역사를 보아도 영
국의 퓨리탄, 불란서 대혁명, 미국 건국 등 모두가 불의에 대한 [아니오]란
한 마디의 외침으로 생겨진 것이다. 신앙에 맞지 않는 불의에 대해 [아니
오]할 수 있어야 한다.
2. [ 예 ]
이 세상에는 무조건 [아니오]하면 영웅이 되는줄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다.
우리는 신아엥 대해 [예]하고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세례요한은 부정에
만 그치지 않았다. 그 부정은 그리스도를 긍정하기 위한 부정이다.
베드로가 닭 울기전에 세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다. 이 부정이 일평생
을 통하여 씻지 못할 과오가 되엇다.
로마가 영화의 절정에 있을 때 기독교라는 골치 아픈 존재가 들어왔다.
더러워진 문명의 육욕적인 물결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고귀한 인간의
가치를 되찾고 평가절하면 생명의 귀중성을 인식시키며 영혼과 운명을 새로
이 평가했었다.
많은사람들은 양심을 팔면서 로마를 신봉하느니 보다 오히려 죽음을 택했
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
2).
이 말씀이 [예]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이 두가지가 항상 조
화를 이루어야 한다. 부정으로 파괴된 빈터 위에 긍정으로 새집을 지어야
한다. 무조건 비판하는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고 긍정을 위한 부정이 필
요하다. 또 후회없는 책임 의식이 요구된다. 결단성 있는 신앙이 필요하다.
[아니오] 의 부정에 냉철하고 [예]라고 긍정적인 사실에 적극 참여하여 긍
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결론
개혁자 [루터]는 종교개혁의 큰 일을 앞두고 곤경에 빠졌을 때 이것을 면
하려면 [야 (Ja)] 한마디로 족했다. 그러나 그는 [나인(Nein)] 이라 했다.
이 한마디에 유럽이 동요하고 역사가 뒤바뀌었다. 가롯 유다는 부정을 위한
부정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과오를 범했다.
긍정과 부정은 철칙으로 되어 있는 인간의 질서다. [노][예스]를 분명히
함으로 사회는 혼란에서 벗어난다.
우리도 책임있는 긍정과 부정을 발표하여 우리의 신앙을 찾자. 예수님에게
는 [예스] 세상을 향하여는 [노]라고 바른 의사 표시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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