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서철에 대한 신학자료

  조회수 : 505    / 등록일 :    / 출처(저자) : 쉐마주석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신학)

오늘날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지켜졌고 미국 선교사들에 의
하여 한국에서도 지켜지게 된 연례적인 교회의 절기이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영국 국교회의 예배 형태를 간소화 하려는 청교도의
소망과 그 교회에 의하여 지켜진 수많은 절기들을 지키지 않으려는
그들의 목적에서 그 유래의 간접적 기원을 찾을 수있다. 유럽의 정
권들은 경우에 따라 불특정적으로 감사일을 지정하였다. 그 한 예
로서 흘랜드의 라이덴에서는 1575년 1O월 3일 그 도시가 해방된 1
주년을 기념하여 그 날을 감사일로 선포하였다. 미국에서 연례적인
감사정이 채택되기 전에 이러한 채택에까지 이르게된 과정을 우리
는 추적할 수 있다. 1621년 아메리카의 플리머드에서 첫번째 수확
을 거 둔 후에 총독 브래드퍼드는 네 사람을 보내어 새를 사냥해오
게 하는데 이는 이 즐거운 날을 "보다 특냥한 방식으로 함께 즐기
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륙에 도착하여 거둔 첫 수확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후 1623년 7월에 총독은 오랜 가뭄
후 내린 비에 대하여 감사일을 정하였다. 역사 기록들은 1632년 아
일랜드(Ireland)로부터 물자가 도착한 것 때문에 유사하게 감사일
을 지정한 사실을 보여준다. 매사추세츠주에서 1632, 1633, 1634,
1637, 1638, 1639년 플리머드에서는 1651, 1668, 16SO(1680년의 권
고의 형태는 이 날의 준수가 연례적 관습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1689, 1690년에 감사일 지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한쇤 화란령
아메리카 식민지였던 뉴 네덜란드주의 종독들은 1644, 1645, 1655,
1664년에 영국령의 뉴욕 총독들은 1755, 1760년에 감사절을 지정하
였다. 미합중국 독림전쟁 기간동안에 감사절은 전국적으로 지켜졌
고 연례적으로 의회에 의하여 천 거되었다. 그러나 1784, 1789년
평화 감사일 사이에는 국가적인 감사일은 없었다. 17S4, 1789년의
경우에는 와싱턴 대통령이 헌법 채택을 위한 감사일을 천거하였다.
그 이후로는 1s64년까지는 대통령들과 총독들에 의하여 특별한 날
들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1864년에 이르러서야 추수감사절이 현행
처럼 연례적인 국공일로 지정되었다. 추수감사절의 날짜는 1941년
까지는 대통령의 연례적 선포에 따라 각기 달랐으나 1941년 미국
의회는 대통령과 합의 아래 11월 넷째주의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이날을 휴일로 공포하였다.
한국에서는 1904년 이후로 11월 10일을 장로교회 단독으로 추
수감사절로 지켰다. 그후 1914년 각 교파 선교부 회의를 거쳐 미국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셋째주의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전도부
에 보내 전도사업에 쓰기로 하였다. 그후 수요일을 일요일로 변경
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인 수확제는 추석이고 기독교의 추수감사
절이 전통적인 추석과는 무관하게 수행되므로 교회의 추수감사절은
그저 교회적 행사로서 인식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하여 일부 교
회들은 추석을 전후한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도 한다. 추수감
사절이 축제로서의 본래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기 위하여서는 추석
이란 고유의 민족 명절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