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시 33:1)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이 불경스런 입
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영감받은 저자는 성도들이나 의인들을 지적하여 말하고 있다. 그 이
유는 그들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결코 맛보지 못한 불신자들은 마음으로부터 그를 찬양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
께서도 불신자들이 불경스러운 입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
신다 그러나 그 문맥은 왜 이 권면이 성도들에게만 적합한가를 더욱 분명히 보
여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하반절을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라고 해설하는데 그것은 만일 악인들이나 혹은 위선자들이 이 실행을
시도하다가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비
난이나 불명예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아니 그보다는 그들이 하나
님의 이름을 모독할 뿐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내가 이미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
께서 스스로 은혜로우신 선택으로 그의 이름이 그사역에 적합한 증인들에 의하
여 정당하게 찬양을 받으시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교회를 창조
하신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라는 하반절의 참의미는 그들이 더욱 열심히 몰두할 다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날마다
그의 은혜를 주셨으며 또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본 것처럼 그의 무한하신 자비가
그들을 위한 특별한 은혜로써 주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서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또한 비합리적인 일이었다. 그
문제의 요점은 그것이 적용되는 것이 의가 되는 그 주요한 활동은 사람들의 마
음속에 심어진 하나님의 의와 자비,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을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것이다 다른 주석가들을 따라 나는 찬송은 마땅
히'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마땅히'라고 번역된 단어를 `원하다
혹은 '바라다'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아바)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본다면 당연
히 '바람직하게' 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또한 분명히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
렇게 자비롭게 대하신다면 그들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전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지자가 첫 귀절에서 의인 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후 곧
마음의 내면적인 성실을 포함하는 정직한 자라는 말들을 덧붙였을 때 그는 참
된 의가 무엇인가. 혹은 그 참된 의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를 정의한 것을
또한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 John Calvin / Calvin Commentarie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