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빈들에 서서 (시)

  조회수 : 519    / 등록일 :    / 출처(저자) : 이현주




가을의 빈들에 서서

추수 끝난 가을의 빈들에 서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서로 사랑할 것
을 가르쳐주신 하나님. 눈 앞에는 한 해의 모든 피곤
한 노동을 마치고 편하게 누워 있는 대지가 있습니
다. 독한 비료와 농약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 가슴
이 답답하지만 대지는 자기의 할 일을 마치고 지금
빈 몸으로 하늘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봄에 씨앗을
품었다가 인고와 시련의 여름을 보내고 결실의 가을
에는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삼십배 육십배 백
배의 열매를 바쳤습니다
오 하나님 저 말없는 대지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만나게 해주신 사람
끼리 미워하여 벌이는 무서운 전쟁은 지금도 이 작은
지구를 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꽃은 벌에게 꿀을 주고 벌은 꽃에게 생명을 주는
아름다운 이 자연 속에서 여전히 어떤 부자들은 가난
한 자들에게 돌아갈 몫까지 가로채고 있습니다
세월은 내일을 향하여 흐르고 강물도 바다를 향하
여 흐르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지어 입은 철갑옷 속에
갇혀 새로와지는 것을 미워합니다 낡은 법규와 법제
안에서 스스로 굳어져가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선전합니다.
하늘은 사람에게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를 주시
어 말하기는 더디하고 듣기는 빨리하라 하셨는데 오
히려 듣기는 싫어하고 말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의 시
끄러운 소리들이 신선한 공기만 더럽히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약속들의 홍수가 정초로부터 지금까
지 우리를 휘몰아 왔습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화살
표들이 우리의 길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쌓이는 것
은 다만 인간의 인간에 대한 불신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의 크신 팔을 휘두르시어 이
모든 불신과 미움과 전쟁과 장벽들을 거두어 가시옵
소서
잉글랜드와 아일 랜드에서는 더 이상 천주님과 예
수님이 싸우지 못하게 하시고 알라로 하여금 중동
땅에서는 여호와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고, 인도 땅에
서는 바라문과 싸우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화살
을 꺾어 붓대를 만드시고 창칼을 녹여 보습을 만드소
서. 여전히 하나가 되어야 할 것들이 나뉘어 있는 불
쌍한 형편을 돌아보시어 어서 속히 시원하게 통할 수
있도록 막힌 장벽은 허물으시고 묶인 사슬은 풀어 주
시옵소서 .
우주 앞에서 지극히 작은 공인 이 지구 위에 그어
진 모든 금들을 당신의 손으로 지워주시고 다만 아름
답게 숨쉬는 초록별로 라나게 하옵소서 자유를 말하
는 사람은 저렇게 많은데 아직도 자유는 아승기만 합
니다. 정의를 약속하는 사람은 저렇게 당당한데 아직
도 이 땅에는 자기의 책임이 아닌 불행으로 눈물짓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저물어가는 가을의 빈들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릅
니다
겸허하게 하옵소서
인내하게 하옵소서
희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어둠 속61 서 부르짖는 자에
게 빛
의 아침으로 오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