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을 따지지 않는 人生이라야
마 20:1-10
예수께서 품삯문제를 말씀하실 때는 거의 언제나 주인의
입장에서 말씀했습니타. 그래서 어떤 학자는 예수의 직업은
"목수"라 한 것은 잘못이고 청부업자라 해야 맞는다고 했습
니다.나중에 아버지 요셉의 뒤를 이은 예수는 사람을 채용하
고 품삯을 지불하고 물품을 사들이는 인사과장과 보급계장의
일을 했고 따라서 나사렛도 약 만여 명의 시민을 가진 도시
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좌우간 이 비유는 옛날 이야기라기 보다는 현대 도시사회
의 냄새가 풍기고 공업도시가 언제나 당면하는 문제를 지니
고 있습니다. 남을 고용한 이와 남에게 도용된 이 사이에 계
약이 맺어져 봉급액수, 근무시간, 노동조건 문제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하루의 일이 마감되고 일당이 지
급될 때 불과 두시간 전에 들어와 일하기 시작한 녀석이, 아
침부터 종일토록 일한 나와 꼭같은 품삯을 받는 것을 보았을
때 내 기분이 상처를 입은 것이요. 도저히 공평하게 느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보기보다는 훨씬 심각한 문제를 말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 방법이 우리 방
법과 다를 때는 우리는 그의 방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
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몇 가지의 중
요한 지혜가 이 비유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1. 이 비유에서 예수가 말하려는 진리는 사람이면 어떤
사람이든 이 세상에서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 그런 말이야 누구든 못하나" 하겠지만, 민주주의 사
회에서 실업자가 되어 본 사람은 이 말이 심상치 않은 말임
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이처럼 일어나서 "아니고 !
또 한나절 고생해야 하나,,,,,," 느끼는 이는 오히려 즐거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신문에서 저 신문으로, 이 벽보판에
서 저 벽보판으로, 이 친구에서 저 친구에로, 직업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내 할 일이 있다는 것, 직업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할 일이 없이 초조하게 더듬
기만 하는 이들이 사방에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불만이 가득찬 사람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
다. 자기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킬 기회를 안타깝게
찾는 이들을 친척들이나 친지들이, 시에서나 나라에서, 돌아
보지 않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 사람 자신이 자
기 눈에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이냐,,,,,," 느끼도
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 "나
는 세상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잘못 태어난
오발탄 인생이다".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엔
내가 설 자리가 없다고" 느낄 때 자존심은 그 마음에서 떠나
는 법입니다. 일없는 속상한 심정, 오랜 시일을 직업없이 지
나는 이들 중에 "차라리 전쟁이라도 났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지금이 바로 말세라고 단정
하고 최후의 심판이 몇 달안에, 혹은 금시 닥쳐올 것처럼 강
조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 속에는 이런 세상은 망해야
하니 전쟁이든 폭동이든 나서 혼란이라도 닥아왔으면...하는
심리로 꽉차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을 저주하는 심령들이 적
지 않습니다. 직업이 없는이, 벌이가 없는 사람은 위험이나
죽음에 더욱 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할 일과 직장은 모든 이에게 반드시 있어
야 합니다. 놀고 먹는 이는 사람노릇 하기는 부족하고 기생
충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라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말중에 가장 처량한 말은 장터에서 할 일 없이 서있는 사람
에게 "왜 그렇게 아무 일도 안하고 서 있느냐"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실업자의 말입니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주지 않
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무도 나를 필요한 사람 으로
보아 주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일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일이 힘들어서 망가지기 보다는, 하는 일을 의미있
게 느끼지 못하거나 할 일이 없어서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
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어서 정신의 건강을 잃는 것이 아니
라 고될만한 일감이 없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잃는 것입니
다.
이비유가 우리에게 깨우척주는 이치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호소입니다. 교회는 그래
도 언제나 사람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회에서
거절당한 사람을 위한 장소가 교회에는 있어야 합니다. 세상
이 그이에게 눈 감았을 때 교회는 그에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