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생애3>형통한 사람 요셉

  조회수 : 792    / 등록일 :    / 출처(저자) : 황석용목사 사랑하는교회



우리는 지난 시간 요셉이 팔려가기까지 섭리하셨던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운명에 처한 요셉을 팔려가게 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요셉을 죽이고자 벼르는 형들로부터 ?요셉을 보호하시기 위해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물없는 ?웅덩이를 준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때 마침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을 ?만나게도 하셨으며, 또 유다의 마음을 움직여 요셉을 팔아버리자는 제안을 ?하게도 하셨습니다. 결국 이런 하나님의 섭리로 요셉은 우여곡절 끝에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멋지게 역사 하시다니" 하면서 감탄을 ?하지만 팔려 가는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감탄을 자아낼 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원망스럽고 답답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두렵기까지 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운명이 바뀌어진 요셉
사실 요셉이 이렇게 팔려갔다는 것은 요셉의 운명이 바뀐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었습니다. 팔리기 전 요셉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 ?다. 그는 열 한 번째로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장자로 인정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행운아 였습니다. 비록 열 한 번째의 아들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그를 장자로 인정을 했고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이런 요셉, 그의 미래는 참으로 밝고 촉망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이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사랑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신세가 된 것이었죠. 늘 팔려 다니는 사람이었더라면 이 일이 그리 서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 대해 기대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 ?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참 운이 없었어, 하필이면 그런 집에 팔려갈게 ?뭐람, 이번에는 좀 괜찮은 주인을 만날 수 있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소망도 가져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입장은 그런 것이 아니 ?었습니다. 팔려 가는 일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니 이 일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미리 생각을 하고 그 ?일을 맞이하면 그래도 마음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 덜 당황하게 되지 ?만 전혀 뜻하지 않았던 일을 만나면 당황스럽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팔려 가는 이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두려움, 낭패감, 당혹 ?스러움 등이 뒤엉켜 있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이런 요셉이 이제 애굽의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기에 이릅니다. 함께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자 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신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신세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그는 노예 신세가 된 ?것입니다. 촉망받는 젊은이에서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 중에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제도가 바로 이 노예제도입니다.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요셉이 노예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그렇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의 가장 밑바닥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사람 이하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을 향해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요.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 일입니까? 인간으로서 ?최하의 삶도 아닌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요셉을 향해서 형통 ?하다니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제가 뭔가 잘 못 알고 있나 싶어서 형통 ?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됨" 이라고 설명을 해놓고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요셉이 뜻대로 잘 ?되었습니까? 아니죠. 오히려 비참한 인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을 향해 형통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 형통이라는 말이 ?잘못 번역이 되었나 싶어서 원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본문이 번역하고 있는 이 형통이라는 단어가 '찰레아흐'라는 단어로 쓰여 ?지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번성하다. 성공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 ?니다. 형통이라는 말과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성공한 사람입니까? 오히려 쫄딱 망한 사람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 좋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을 향해 성경은 성공한 사람, ?형통한 사람으로 표현을 해 놓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목사님 요셉이 비록 종으로 팔려 왔지만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모든 것을 ?다 관리하게 되었잖아요. 다른 종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성공이지 않습 ?니까?"라고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