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사상

  조회수 : 440    / 등록일 :    / 출처(저자) : 김우창



12월의 사상

12월은 우리의 삶을 오늘을 넘어가서
지속적인 호를 그리게끔 해준다

사실 사람이란 별것이 아니어서 사람의 사람됨의 근본을 이루는 내
면의 자유도 결국은 외면적 조건으로 결정되게 마련인지 모른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마음 속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
낌까지 조종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명제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려고
한다. 스스로가 궈블로프의 개와같은, 움직이는 꼭둑각시라고 생각하
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잡지들을 보면 대체로 연초에는 연초의 생각 연말에는 연말의 생각
봄에는 봄 생각 가을에는 가을생각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생각이 그
렇게 단추를 누르는 대로 주문되는 모양의 것이 나오는 것인지 의문이
가기도 하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 문화에 있어서 가짜적인 요소를 증가
시키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는 비분강개론이 마음에 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부질없는 마음의 표현에 불과한가 가을이 깊
어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연말이 되면, 그러한 계절과 달력의 마무리에
우리의 느낌과 생각이 반응하게 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또 여유있는 시절이라면 변해가는 절후의 마디를 기념하는 작은 행
사를 통하여 이를 잠깐이나마 멈주게 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연년세세 되풀이 되는 이름있는 절후의 축제가 공허해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되풀이를 싫어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겠
으니 , 영원한 되풀이는 그 나름으로 공허하기보다는 솔직한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것일 것이다.
삶이란 사실 그날그날의 되풀이 속에 있고 나를 앞서간 또 나를 뒤
따라 올 수천 수만의 되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삶에 따
분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은 감동을 줄 수 있
는 신비의 원천이기도 하다.영원한 되풀이에의 참여-우리는 이 신비에
망연해지는 것이다
인위적인 달력의 제정과 상업적으로 조성되는 무드에 끌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신체의 신진대사를 포함한 모든 삶의 작용의 위
축으로 하여 12월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끝장의 스산한 느낌을 가져오
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어느덧 이 해도 다 갔구나 하
고 뇌어 보게 된다. 그것은 세월이 빠르다는 감탄이기도 하지만, 이러
나 저러나 빠르게 마련인 세월올 충분히 선용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나
타내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했어야 할 일로 하지 못한 일이 너무많고 시작은 해놓
고 제대로 끝을 내지 못한 일이 너무 많고, 충분히 꼼꼼하게 만족할
만하게.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너무나 많다 끝장의 느낌을 주
는 것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지만 하옇든 그것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하지 못한 것 들에 대한 회한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부터
라도, 또는 다음 해부터라도 조금 더 맣은 일을 더욱 충실하게 하겠다
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결심으로 이어지고, 때이른 신년 결의를 벌써
준비해 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는가? 돈벌고 출세하고 사는 환경
을 편안하게 하며 호화롭게 하고-이 모든 것이 운수와 권모술수의 조
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나의 일의 잘잘못에 연
유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함은 세간의 명리의 경
쟁 속에서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인가? 세간 사람의 동기로서 그것이 직
접 의식이 되든 무의식의 상태에 남아 있든 이러한 것들을 무시할 수
는 없겠으나, 우리가 일을 생각함은 그것이 보다 더 근원적인 의미에
서 사람의 생존의 조건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통하
여 우리가 삶의 근본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것임은 물론, 삶의 보람의
하나가 주어진 세계 주어진 사회에 갖가지로 묶여 들어가는데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일을 통하여 이러한 묶임을 얻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생존의 보람을 얻는 것일 것이다.
또 일은 더 철학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뒷받침 해 준,다 우리
의 손으로 만드는 것들만이 우리의 허망한 생존을 붙잡아 준다. 그것
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려주고 우리의 흩어지고 사라지는
시간을 잠시나마 남아있게 한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집단적
으로도 그렇다, 문화와 제도도 집단의 삶에 조금 더 지속적인 틀을 주
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또는 세상의 명리를 추구하
는 사람들의 동기에도 흩어지는 삶을 물전과 사회적 지위로-다른 사람
의 눈길을 통하여 확연하게 하려는 면이 있는 것일 것이다(경쟁적 인
생의 살벌함 속에 이런 애틋한 사연을 발견하려는 것을 우습다 할 사
람도 있겠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