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과 입맞춤

  조회수 : 501    / 등록일 :    / 출처(저자) : 최세창목사



제목 : 면책과 입맞춤
<잠언 27:5-6>

1. 시작하는 말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
다. 남의 충고나 꾸지람을 듣는 것을 몹시 싫어하면서도, 남을
충고하거나 꾸짖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다
른 사람에게 좋은 충고나 유익한 책망을 하기가 무척이나 어
려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문제를 간파한 예수님의 동
생 야고보는, 야고보서 1:19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
내기도 더디 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해야 할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일은, 남의 충고나 책망을 속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 책망

잠언 기자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른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대신에 덮어주고 감싸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덮어주
고 감싸주는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고치도록 하지 않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입니다.
인간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더욱 키워 나가야 하는 존
재라는 점에서 볼 때, 또 성장해야 할 불완전하고 미숙한 존
재로서 실수와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충고와
책망 등의 바른말을 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귀한 복
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
다. 다시 말해서, 마음속의 사랑이 꾸지람이나 고쳐 주는 행위
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사랑이란 속에 머물러 있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상대에게 표현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칭찬이든 책망이든 물질적인 선물
이든 간에 상대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속사
랑은 무관심이든지, 아니면 참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부부 사
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서로에 대해서 가끔은 칭찬이든
책망이든 간에 해 주어야지,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 하는
식이라면 아주 심각한 국면에 처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교도소에서 200명에게 '왜 이혼을 했느냐?'라고
설문 조사를 한 보고서를 보면, 제일 많은 숫자가 남편이 사
랑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그 다음에 남편
이 선물을 사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부 관계나 상하 관계 또는 친구 관계에 있어서
충고는 물론, 마음놓고 책망해 줄 수 있고, 또 받아들일 수 있
는 사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몸이 아파
서 병원에 간 환자에게, 의사가 "간이 나쁩니다. 신장에 이상
이 생겼습니다. 아니, 어쩌자고 이 모양이 되도록 그냥 두셨습
니까? 이 약을 잡수시고, 이 주사를 맞으셔야 합니다."라고 지
적해 주고, 책망하고, 권하는 것은 아주 마땅한 일로 여깁니
다. 그러면서도 몸보다 더 중요한 인격과 그보다 훨씬 더 중
대한 영적 면에 대해서는 지적도 충고도 책망도 들으려고 하
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만 듣고 따르면, 얼마든지 인격이 달라
지고, 얼마든지 승리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데도 말입
니다. 실제로, 훌륭한 삶을 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변화시킨
그 한마디'를 심비에 새겨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찰스 2세의 담당 목사인 히킹톤 목사는, 설교 때마다 왕의
악덕에 대해 설교를 했으나 왕은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행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당신과 나
는 좀 더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소. 나에게 그렇게 혹
독하게 대할 필요가 없지 않소? 어쨌든, 내가 당신 뜻대로 변
화되는지 어쩐지를 두고 보시오." 그러자 히킹톤 목사는 "좋습
니다. 좋아요." 하며 다음과 같이 응수했습니다. "당신의 재위
동안 당신의 처리에 대한 제 비판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리
고 당신이 변화될 때 비로소 나도 변화될 것입니다."
왕, 찰스 2세는, 좋은 친구란 충성에서 나오는 통책을 할 수
있는 친구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감정을 상
할 수도, 고퉁을 줄 수도, 금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도,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감히 엄책할 수 있는 친구가 정말
좋은 친구임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서로간에 원수가 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충고나 책망을 할 수 있는 좋은 벗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
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세상에 영악하지 않은 사람이 어
디 있습니까? 애들도 얼마나 영악합니까? 뭣하려고 바른말해
가면서 인심을 잃고, 손해보려고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