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오순절운동의 시작과 발전 (3) ***
= 아주사(Azusa)거리의 부흥과 시무어(Seymour)
파아함의 휴스톤(Houston)신학교에 아주사 거리 (Azusa street)에 대
부흥을 일으킨 아주사의 사도라고 불리우는 시무어(William J.Seymour)
가 입학하여 파아함의 신학사상을 배웠다. 그는 1905년부터 1906년까지
"칭의","성화","성령 세례의 증거인 방언","신유","전천년 재림"의 교
리를 배웠다. 당시 그는 남부의 인종차별때문에 파아함의 학교에 입학
할 수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망으로 인해서 공부하게 되었다.
거기서 시무어는 파아함의 오순절 메시지가 옳다는 것을 확신은 했지
만 방언을 말하는 일이 벌어졌고 당신의 언론들도 "기적"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아함이 가르치는 오순절 메시지를 받아 들였다.
1906년 4월 9일 시무어는 로스앤젤레스의 노드 보니 브래 거리(North
Bonnie Brae Street) 214 번지에 있는 한 침례교인의 가정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사도행전 2장 4절을 펴고 성령 세례의 표적이 방
언이라고 말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7명)이 성령의 세례를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시
작했다. 그 소문은 사방으로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장소를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312번지의 한 건물로 옮겼다. 그 건물은 전
에는 감리교회의 집회장소였다가 당시에는 마굿간으로 사용하고 있던건
물이었다. 이 곳에서 시무어는 여러 교파와 인종이 뒤섞인 사람들을 상
대로 하여 예배를 인도했다.
집회는 엄청난 것이었다. 울고, 춤추고, 황홀경에 돌입하고, 방언을
말하고 노래하고, 통역하는 등의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나성 타임지
(Los Angles Times)1906.4,19 자는 초기 아주사(Azusa)의 집회를 지진
과 같았었다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였다.
집회의 소문이 사방으로 알려지게 되고 미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집회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고 찬양이나 광고도 하지 않았으며 폐회
선언도 없고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찬미하며 기도하고 설교하
고 성령을 받았으며 매일 밤낮 쉬지않고 모이고 또 모여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계속되는 강력한 은혜를 받았다.
이 집회의 두드러진 사실은 성령세레와 방언을 받는 일이었으며 마치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 강림을 연상케 하는 모임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이 미국의 여러 지방과 캐나다에서 왔고 여러 나라에서
여러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또 성령을 받기 위해서 왔다.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많은 외국인들은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집회
의 진행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데 불편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들은 거기서 군중들이 그들의 본국 말로 방언하는것
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곧 구원받은 확신을 얻고 성령의 충만으
로 성화되어 복음을 들고 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에 북부 캐롤라이나에 힘있는 성결교 단체가 있었다. 저희들은
많은 교회와 교역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부지방에 성령이 강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때에 그들 생각에 자신들은 이미성
령을 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서부의 소식에 관심이 기울어졌다
그 동지 중에 한 사람인 케슈엘 목사가 1907년에 나성(LA)으로 급히 가
서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아 보았다. 그런데 그는 곧 성령을 흠
뻑 받아 가지고 북 캐롤라이나로 돌아갔다. 얼마 후에 곧 "던"에서 집
회를 열었는데 거기에는 성결교단의 목사들이 다 모이고 수 많은 교인
들도 모였다. 이 집회의 결과로서 오순절 성결교회가 세워졌다.
타일러 목사가 기록한 바와 같이 대다수의 성결교 목사가 성령의 세례
를 받고 일어나서 고함치며 춤추며 방언하였다. 그 목사들이 각각 자기
교회로 돌아가자 각처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오순절 역사에 녹아지고 항상 방언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아주사 거리 선교회'(Azusa Street Mission)가 조직되고 이 집
회는 계속해서 열기를 더해 갔다. 이렇게 시작된 집회가 3년간이나 계
속해서 열기를 더해 갔다. 이렇게 시작된 집회가 3년간에나 계속되었다
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부흥이 계속되자 시무어(Seymour) 와 그의 동료들은 4면의 월간 팜플
렛인 사도적 믿음(The Apostolic Faith)을 간행하였는데 첫해에 보급
부수가 5,000부에서 20,000부로 증가하였다. 부흥회의 소식은 계속 퍼
지고 부흥은 계속되었다.
아주사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령운동을
일으켰으며, 1906.4.9에 시작된 이 부흥은 마침내 미국 전토에 큰 불을
일으키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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