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와 구원에 대한 논평(1)

  조회수 : 683    / 등록일 :    / 출처(저자) : 차영배교수 총신대학


*** 성령세례와 구원에 대한 논평 (1) ***

총신대:차영배교수

서철원 교수의 논지는 '예수를 믿으면 곧, 성령을 받는 것이고,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다'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중생 후
별도의 성령세례'라는 공식은 오순절계통의 주장이고, 개혁신학의 주장
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중요한 것은 구원의 순전히 은혜
로 얻는 것이므로 인간적인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칼빈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물론 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강의 초안을 다 읽고 느낀 것은 주경신학적인 것만이 아니고,개
혁신학적 입장에서 볼때 과연 참으로 칼빈주의 신학이 바로 세워질 수있
을까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하므로 본래의 동기 곧 개혁신학을 세우고자
하는 동기로부터 빗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필자에게는 약간의 염
려가 된다.
I. 무엇보다 먼저 언급된 '중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가
문제다.
'중생후의 별도의 과정','한 생명의 출생','중생할 구약시대의 백성'.
'중생 후의 성령 세례도식', '변화되고 중생되는 기간'등의 표현을 가지
고 서교수의 중생관을 단정하기는 곤란하나 다음과 같이 이해해도 무방
하 것같다.
첫째, '중생하면 예수는 믿게 된다'는 것은 좁은 의미의 중생을 말한다.
그 성경적 근거는 요한복음 1장 12,13절,3장 3-15절 베드로전서 1장 3절,
23-25절 야고보서 1장 17,18,마태복음 16장 16, 17절 마태복음 11장 27
절,에베소서 1장17절 등인데, 이러한 말씀들이 뜻하는 거듭남을 좁은 의
미의 중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중생은 한 생명의 출생이다. 따
라서 출생한 후에 또 하나의 출생이 추후에 공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에 성령을 또다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 믿을때, 한생
명이 출생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도바울의 경우는 중생하는 기간이 있
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생이 출생과 같느냐는 것이고, 출생이면서
어떻게 기간을 갖느냐는 것이다. 니고데모의 질문을 상기할 때 중생을출
생이라고 볼수는 없다. 중생이란 옛 자아를 뽑아버리고 새로운 자아나개
혁신학, 특히 바빙크 신학의 강력한 주장인 것을 아는 우리는 중생이라
는 개념을 가능한 한 쓰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본다. 바빙크 신학이 이러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어디에도 새로운 피조적 생명이 들어온다거나,
이러한 생명을 얻는다는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듭나는 기간'
이라는 표현은 옳다고 보여진다. 사도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중생시
기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메섹 도상의 3일쯤의 기간 어느 시
점에 중생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로써 개혁신학에서 주장하는 중생시
기(시점)의 불확실성이라는 교리를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서교수는 중생을 좁은 의미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좀더 넓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중생에 해당되는 용어가 '아나겐나오( 다시
나다)'가 쓰인 부분을 더 깊이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디도서 3장 5
절에 '중생의 씻음'이란 말이 나온다. 이것은 바로 그뒤의 표현처럼 '성
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여기서 새롭게 하심이란 '아나카이노오(다시 새
롭게 하다)' 에서 나온 말로써 중생의 씻음과 같은 뜻으로 보면 중생의
씻음과 같은 뜻으로 보면 중생의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이것은 문맥상
(그 다음절) 성령이 풍성히 임하실 때 이루어진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중생의 씻음 곧 성
령의 세례와 같은 역사가 일어난다. 바빙크의 해석에 의하면 도르트 신
조의 중생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과 같은 성령의 불가항력적 역
사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중생이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몸의
구속, 곧 몸의 부활에 이르러서야 완성에 이른다. 마태복음 19:28 '세상
이 새롭게 되어'는 '중생의 때' 곧 몸의 부활이 있을 때, 곧 인자가 자
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다시말하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심판하
실 때에 일어나는 중생을 가리킨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중생이다.니고
데모의 질문에 부응하는 제2의 출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잠재의
식 상태에서의 중생 또는 유아의 중생까지 포함시키면 네 가지의 중생관
이 있는 셈이다.
성령 세례와의 관계 또는 구원과의 관계를 말할 때에는 이 가운데서 어
느 중생을 가리키는지를 밝히면 오해의 소지가 줄어든다.
II.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이다.
서교수에 의하면 '성령받는것','예수를 믿을 때 받는 것','성령께
서 신자에게 오시고 내주하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