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설교와 삶의 적용 (2)
===이동원 / 지구촌교회 목사
1. 청중 전체를 위한 것이면서도 개인적이어야
우리가 적용을 할 때 어떤 특정 개인만을 염두에 둘 수는 었습니다.
전체를 향해서 일반적으로 적용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내 설교를 들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목자의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향해 설교를 하면서도, 오늘이 메시지의 설교를 들
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상관이 없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어떤 한 사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청년회 헌신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해봅시다. 자연히 그 설
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청년을 향해서 헌신을 촉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날 저녁에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예배에 참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청년이 아닌 노인도 참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간단하게나마 그들을 배려한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저는 청년을 향해서 헌신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헌신은 청년에게만 필요할까요?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올수록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두려움 없이 아름답게 설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더욱 중요할까요. 청년의 헌신 못지않게 노년의
헌신은 더욱 귀한 것입니다. 석양에 가까운 노년에도 이 헌신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도 그날 청년회 헌신예배에 참석한 어느
노인은 그 메시지가 자기를 위한 메시지였다는 감동을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레서 아흔아흡마리 양을 향해 설교하면서도
아흔아흡의 대다수와 상관이 없을 어느 한 영혼, 한 개인에 대한 배려가
우리의 적용에서 동시에 어떻게 균형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 적용
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정생활 세미나가 많이 보편화되었고 또 목사님들이 가정에
대한 메시지들을 강단에서 많이 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l975년, 제가
가정생활 세미나를 할 때는 가정생활 세미나라는 이름도 없었던 때였습
니다. 그런 것을 왜하느냐고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불
우한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늘 가정에 대한 관심이 역설적으로 많아
서 그동안 부부에 대한 설교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예배가 끝난 후, 혼자 사는 한 자
매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월 가정의 달이 되어 목사님이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할 때만 되면 더 외로워져요 늘 부부에 대해서 설교
를 하시는데 저 같은 사람은 교회에서 설 자리가 없네요"라고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말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가정에 대해서 설교하면서도 마지막에 늘 싱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
려고 합니다. "여기 오늘 싱글이 계십니까? 내가 처해 있는 삶의 고독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는 하나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나의 사랑이요, 내 생명의 전부이신 주님이여!'
라고 의지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신랑되신 주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처한 고독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교회라는 연장된 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이 땅에서 기정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부에 대한 교훈을 강조할 때 이 단순한 적용을 통해서 그
설교에서 소외될 수 있는 어느 싱글이나 또 외로운 과부의 삶을 살고
있는 분들과 같은 사람들을 향한 배려를 놓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혹은 우리는 건축설교를 합니다. 당면한 예배당 건축의 과제 때문에
열심히 건축설교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적으로 전교인들이 가져야
할 관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당 건축이라는 문제가 전혀 나
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켜지는 교인들이 오늘의 예배 현장에는 없을까요?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오늘 와서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그것이 아닙니
다. 그들에게는 보다 절실한 다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한
시간 내내 성전건축의 위대한 과제를 힘주어 강조하고 끝내셨다면 어떤
교인은 떠나가면서 계속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좋은 교회 지
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나
처럼 오늘 이 절박한 삶의 문제에 대해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