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하도에서 겪은 일이다. 한 노인이 다가와 "신사양반, 급해서 그러는데
500원만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도 지폐도 없었다.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둔 지갑에는 지폐가 있었지만, 큰돈은 주고 싶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개찰구로 서둘러 들어가려는데 노인의 딱한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다시 뒤돌아 나와 노인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 노인이 상습적으로 동냥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게 지폐 한장 건네지 못한 내 마음은 편치 못했다. 그래서 다시 노인을 찾아
나섰지만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20억명을 넘느다. 작은돈은 없고, 큰돈은 주기 싫다며 노인을 외면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
잊지 말자, 받는 즐거움보다 베푸는 기쁨이 더욱 크고, 베푸는 데에도 때가 있음을.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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