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즐기는 사람/삼상16:6-13
하나님이 사울을 패하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이 천신만고 끝에 이새의 집에 와서 아들을 부르라 할 때 이새는 여덟의 아들이 있었는데도 일곱만 차례로 불렀습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좋게 말을 하자면 현장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새가 막내아들에게 무관심하고 형들은 그를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새는 일곱 명의 아들만 불렀습니다. 일곱 명의 아들이 모두 거부 당했는데 여기서 외모만 보는 눈은 엉터리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 상 16장 6-7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인간은 눈에 약합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연약한 인간들은 자꾸 외모를 봅니다. 외모만 보다가 속아넘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회의에 갔었는데 부부동반으로 모인 회의였습니다. 대표에게 왜 부부동반이었느냐를 묻자 그 사람의 대답은 남자가 혼자서 점잖게 말 안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인격자인지 아닌지, 아부하는 사람인지, 진실된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와 같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아내의 외모가 예쁘지 않더라도 그 얼굴 가운데 평안함이 있고 기쁨이 있고 안도감이 있는 여자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편은 진실된 남자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거나 보지않거나 일관된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확신이 오면 그런 사람을 인사 결정에서 중요한 자리에 올린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거기서 실패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있고 낙심해 보이는 표정이 있어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그 남자는 성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일 때는 잘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을 할 지 모른 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고수의 눈을 봤습니다. 하수는 외모만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내의 얼굴을 통해서 남자의 내면을 본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여덟가지 습관이 나왔습니다. 여덟번째 습관은 바로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안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 되었던 속을 볼 줄 아는 사람이 고수라는 것입니다. 내면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걸 잘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 같이 괜찮은 선지자도 외모에 속으니 우리 같이 한심한 인생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넘어갈 수 밖에 없지요.
요즘은 성형수술도 많이 하고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데 그의 반의 반만큼만이라도 내면을 바꾸는데 투자해보십시오. 말씀으로 내면을 깨끗이 하고 기둥을 세우고 변화가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10년전이나 5년전이나 똑같으면 안되잖아요. 감사와 찬양이 나와야 할 것 아닙니까? 속에 있는 게 나온다고 하는데 속에 있는 것들이 쓰레기이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을 본다는 것입니다. 중심을 본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계가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내면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내면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살펴볼 내용은 다윗은 아버지 머리 속에 아들로써 계산에 넣지도 안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면 불러왔겠지요. 다윗은 사랑에 굶주려 있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동의 상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무관심했고 형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치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처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 치유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그 치유가 코팅 같은 것이라서 다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코팅이 벗겨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 안하고 은혜가 사라지면 코팅이 벗겨지고 그 상처가 올라오는 때가 있습니다.
굶주림의 상처는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윗은 집착이 뛰어났습니다. 사랑의 굶주림이 아내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굉장히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것 같이 보이다가 어떤 때는 어떻게 이렇게 양보도 안하나 싶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보입니다. 일종의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위로 받을 것 같은 여자가 있으면 지독하게 집착합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갈을 취할 때 얼마나 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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