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결산을 생각할 때입니다

  조회수 : 1244    / 등록일 : 2006-10-10   / 출처(저자) : 지구촌교회(이동원목사)


제목:지금은 결산을 생각할 때입니다 (고린도전서 4:1-5)

유명한 거장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씨스틴 채플의 그 천장 벽화 프레스 코를 거의 완성할 때의 일이었습니 다. 작품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여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 을 향해서 마지막 그 finish 터치를 위한 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도왔던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 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 님, 이젠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그리고 몇 달을 더 그는 계속해서 이 작품 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은 완 전히 마쳐진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 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 도 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 하면서 그 장소를 맴돌았습니다. 다 시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 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 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주님 보시기에는 어 떨지 모르지"
이것이 바로 장인 정 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걸작을 낳은 일종의 프로 정 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적 용어를 빌린다면 이것은 철저한 청지기 정신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 정신` 11월은 한 해를 결산하는 달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우리의 일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라도 우리는 지나온 시절을 종종 되 돌이 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 지막 후회 없는 결산을 위한 일종의 중간 결산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작 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 런데 인생을 결산할 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관 점에서 내 인생을 평가해야 하느냐 인 것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인생 을 평가해야 할 것이냐는 물음입니 다. 1세기의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체험했 고 또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자라지 못했고 그 사회 속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 들 사이에는 끝없는 분열과 불화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 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 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자 기들의 인생에 대한 `냉정한 결산`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 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메시 지를 씁니다. 자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요했던 인생의 중간 결산 우리에 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인 생이 지금 결산되어야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결 산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바울 사도는 자기의 관점에 서 본 결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 다고 말합니다. 나의 관점에서만 본 결산 그것은 올바른 결산이 될 수가 없다고 바울은 가르칩니다. 자 3절 에 보시면요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 니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 니"
한 번 따라서 해 봅시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자 기의 인생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 다는 그런 선언이 아닙니다. 판단 은 필요한데 나의 관점에서만 본 나 에 대한 판단 그것은 적합하지 않다 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의 그 지렛대, 자기의 판단의 기준 만을 가지고 스스로를 판단할 때 우 린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언제나 극단적인 두 개의 경향에 빠 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극단은 뭐냐하면 자학이에요 자학 이것은 지나친 과도한 자기 비판의 결과라 고 할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 만 사람이 지나친 자기 비판을 하게 되고 자학에 빠지게되면 몇 가지 문 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상실하게 됩니 다. 다시 재기할 수 없어요 자존감 이 상처를 입고 자신이 무너지는 사 람들은 인생을 향한 다른 도전이 시 작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런 의미에서 자학은 인생의 결코 어떤 복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또 하나의 극단적인 자기 판단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교만` 지나치게 과도한 자기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이런 판단 속에 빠지는 사람들은 거 짓된 자기 허상을 바라보고 자기 실 제 모습이 아니라 허상의 이미지 그 이미지를 설정해 놓고 그것이 자기 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면 되지도 못하고 된 줄 로 착각하는 사람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굉장히 이상적 인 인간인 것처럼 판단하고 착각 속 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일종의 나르시스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여학 교 선생님 한 분이 학생들에게 나르 시즘을 설명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