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용광로
다니엘 3:16-19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 느부캇넷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께 담대히 말하나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해 내실 수 있으며, 오 왕이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왕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니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아니할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며 왕께서 세우신 금상에 경배하지도 아니할 것을 왕께서는 아소서.” 하더라. 그러자 느부캇넷살이 분이 가득 차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한 그의 얼굴 모양이 변하더라. 그러므로 그가 명령하여 말하기를, 그 용광로를 평상시에 뜨거웠던 것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하더라.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고 있는 다니엘의 세 친구와 그들의 시련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다니엘과 함께 바빌론 제국에 포로로 잡혀왔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의 신분에서 벼슬아치의 자리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그들의 믿음으로 인한 시련이 닥쳐, 칼데아인들의 시기로 인해, 느부캇넷살이 세운 금상에 경배할 것이냐 아니면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에 떨어질 것이냐 하는 결정을 해야할 찰나에 들어섰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네로, 도미티안, 트라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데시우스, 아우렐리안, 디오클레시안, 갈렐리우스 황제 아래서 자행되었던 10 차례에 걸친 박해가 있었던 AD 67-313년의 기간이 교회가 “불타는 용광로”를 통과하는 시기였다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때 수천 명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았고, 순교자들의 피는 조그마한 마을들의 하수구로 흘러 내렸으며 원형경기장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성경 또한 이러한 순수한 성도들의 고난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소멸시키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함 중에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되기도 하며, 외적들을 패주시키기도 하며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 또 어떤 사람들은 잔혹한 조롱과 채찍질의 시련도 받았고, 더욱이 결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돌로 맞고, 톱으로 켜지고, 시험을 당하고, 칼로 살해되었으며, 양의 가죽과 염소의 가죽을 쓴 채 유리하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당했느니라.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데가 못되었으므로) 그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였느니라(히 11:33-37).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 각자의 인생 또한 “불같은 시련”으로 비유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12,13).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각자가 불같은 시련을, 즉 본문이 말하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성도가 불타는 용광로를 눈앞에 두었을 때 ― 첫째로, 성도는 담대하며 주저함이 없이 응답해야 합니다.
본문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느부캇네살 왕은 이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낼 신이 누구겠느냐?(15절) 우리가 성경을 차근히 살펴보자면, 성도가 이 세상 왕국의 왕들 앞에 서서 정연하게 자신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과 임무와 약속을 정연히 말했던 장면이 비단 다니엘 3장 이외에도 수 차례 성경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파라오 앞에 섰었고, 느헤미야는 아탁세르세스왕 앞에 섰으며, 에스더는 아하수에로왕의 존전 앞으로 목숨을 걸고 나아갔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또한 헤롯왕과 빌라도 앞에 서야 했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본인 사도 바울 또한 아그립파왕 앞에 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목적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왕 앞에서 담대히 말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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