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을 변화시키는 설교

  조회수 : 1005    / 등록일 : 2006-10-23   / 출처(저자) : 고든 콘웰 신학교/ 해돈 로빈슨


청중을 변화시키는 설교

설교학 교수

그건 정말이지 죽을 쑨 설교였습니다. 달라스에 있는 한 교회에서 요한복음 14장을 설교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본문은 쉬운 본문이 아닙니다. 죽음과 재림에 대한 주석적인 문제로 가득 찬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ꡒ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ꡓ 여러분이라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처소를 어떻게 준비하시겠다는 말씀인가?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인가? 영혼이 잠자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본문을 연구하고 주석서를 읽느라 한 주간을 꼬박 보내었습니다.

설교할 때가 되자 저는 숙제를 끝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본문이었으나 철저하게 연구했기에 주어진 본문의 확실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시작한지 5분이 지나자 저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10분이 지나자 사람들은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줄에 앉아있던 한 성도는 코를 골기까지 했습니다. 더 비참했던 것은 그의 코고는 소리에 아무도 방해받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아직도 그 날 아침을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 깊숙이 처참한 감정이 듭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문제는 제가 설교 시간 내내 저를 사로잡았던 신학적인 난제들과 씨름하는 데 보냈다는 것입니다. 제가 했던 모든 말은 정당했습니다. 신학교 수업이었다면 매우 강한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서, 그 강단에서는 끔찍한 설교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건 제가 성도들의 삶의 문제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답했던 것은 저의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었을 뿐 성도들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 날 저의 설교를 들었던 성도들 가운데는 이제 본향으로 돌아가 주님과 함께 거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ꡒ그가 나를 무덤의 구덩이에 던질 것인가 아니면 나를 안전하게 본향으로 인도할 것인가? 천국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ꡓ

그들이 듣고 싶어했던 설교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ꡒ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우주의 창조주는 우리를 위하여 집을 준비하는 데 2,000년이나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는 데 6일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는 집이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생의 삶이 끝날 때 이 아름다운 집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면서 준비해 놓으신 곳입니다.ꡓ

저는 이러한 설교를 했었어야만 했습니다. 적어도 시작은 그들의 관심사를 가지고 시작 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반대의 실수도 가능합니다. 설교 내내 적용하느라 시간을 보내지만 성경에 근거하지 않을 때입니다. 저는 성경을 약화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연결시킬 수 있는 다리가 아무 것도 없는 고층건물식의 설교도 가능합니다. 그런 설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영원한 말씀의 능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ꡐ언덕 위의 집ꡑ은 서구의 가요에서 나온 것이지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비성경적인 사변으로 가득찬 설교는 결국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제가 서재에서 연구한 것도 사람들의 질문에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성경 본문과 삶을 연결시키는가 하는 적용의 문제입니다.


본문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설교에서 성경의 본문과 삶의 적용을 어떻게 조화롭게 맞출 수 있겠습니까? 기본 원칙은 사람들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성경의 내용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안됩니다. 그리고 나면 적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주석과 해석의 차이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석은 때때로 동사의 시제나 원문에서 강조된 단어를 눈여겨 봄으로써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우리가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는 주일 아침의 설교로서는 결코 적당하지 않습니다. 사실 희랍어나 히브리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현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직업상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ꡒ난 당신이 모르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요ꡓ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와 청중간의 거리감을 생기게 하는 데는 다름 아닌 거만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