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들이 고난받는 이유
▲ 고난의 파도 덮쳐 와도...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선한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괴롭혀 왔습니다. 인간의 원수가 “왜?” “어떻게?” “언제?”라는 질문을 하며 하나님의 지혜에 의심을 집어넣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입니다.
의인들이 고난을 받는 이유는 인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의 일부임을 성경적으로 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허용하신 모든 것에 계획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며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습니다.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매질하시느니라』(히 12:6).
하나님께 때로 불순종한 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자녀로서 징계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징계가 항상 육체적인 고통으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징계가 때로는 육체적인 고통으로 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계로서 우리에게 닥치는 그러한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아들들로 대우하실 것이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징계를 너희가 받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생아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7,8).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아들들로서 이 징계를 견뎌내기를 바라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왜?”라고 묻게 만듭니다. “왜”라는 질문은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을 알지 못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칠흑같이 어두운 깊음을 들여다보고,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고통의 용광로” 속에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찌끼를 정화하시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시는 징계를 통해 우리 삶이 놀랍도록 발전한 것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징계를 겪을 때, 대부분의 자녀들은 바로잡아 주는 것에 결코 감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게 되면 자신들의 아버지가 해 준 징계를 바로 평가하게 되고, 훌륭하고 강한 인격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베풀어주신 훈련을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영들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히 12:9).
고난을 주께서 주시는 징계로 인식하고 조용하게 고난의 날들을 영적인 자기반성과 정리의 시간으로 삼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다.
고산지대 목동이 있었는데 그는 양들을 위험스럽고 가파른 경사지로 인도하는 “방울을 단 양”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동은 할 수 없이 고의적으로 그 양의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다리가 치료된 이후 그 양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금지된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질병과 고통은 때로 선하신 목자께서 그분의 양들을 더 훌륭하게 만드시는 과정입니다. 음악가가 바이올린의 현을 거의 끊어질 정도까지 단단히 죄어서 무한의 화음에 맞춰 조율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들을 자신에게 맞추셔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시고 또 우리로 그분의 거룩하심의 참여자들이 되도록 하시느니라』(히 12:10).
다윗은 “주의 지팡이와 주의 막대기가 나를 위로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지팡이”는 일반적으로 양들이 “금지된 길들”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목자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막대기”는 양이 무리와 떨어져서 헤맬 때 양을 채찍질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은 현명하게도 지팡이와 막대기 안에서 위로를 찾았습니다. 성장하는 아이의 생에서 징계는 훈계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인격 발달에 필수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나쁜 일을 하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고통의 형식을 취하든지 아니면 다른 식의 고뇌든지 징계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과정이며, 우리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 의도된 것입니다. 더 훌륭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농부가 포도 넝쿨을 자르듯이 하늘들의 선하신 농부께서도 때로 고통의 칼이 우리에게 떨어지게 하셔서 더 풍성한 의의 열매들을 맺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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