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보리의 입맞춤 (2)
2. 위선의 입맞춤
이제 두 번째 입맞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의가 화평에 입맞췄을 때 화해의 입맞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갈보리에서 있었던 두 번째 입맞춤은 위선의 입맞춤이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사탄이 그랬던 것처럼 주위를 살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병사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는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여, 가능하시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렇게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위대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겟세마네 동산에 계십니다. 유다가 정원 밖에 숨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니라. 내가 그에게 입맞추면 와서 그를 데려가라.”고 유다가 말합니다. 우리 주께서 겟세마네에 있는 동안 유다 이스카리옷은 밖으로 나가서 인간의 손과 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한 행동을 했습니다. 구주께 위선적인 사랑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합지졸로 이루어진 병사들의 무리가 와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유다는 예수께 입맞췄지만 한 가지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마땅히 예수님께 입맞춤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 입맞추는 것은 옳습니다. 시편 2:12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노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잠깐 그것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입맞추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발에 입맞추라는 뜻입니다. 와서 그의 발 아래 엎드려 그분께 입맞추십시오. 인간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출 때까지는 그 아들에게 입맞출 수 없습니다. 유다는 갈보리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아들에게 입맞추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갈보리 이전에 아들에게 입맞췄습니다. 예수께서 사람과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은 채로 배반당하고 홀로 외로이 고통당하며 십자가에 매달려 게실 때 유다가 그곳에 와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발 아래 엎드려 그분께 애정과 믿음과 신뢰의 입맞춤을 했다면 그는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갈보리에 대한 믿음도 없이 예수님께 입맞췄던 것입니다.
이것은 위선의 입맞춤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예수님께 입맞추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는 종교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갈보리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에 입맞춘다면 여러분은 위선의 입맞춤을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했던 실수는 갈보리에 이르지 않는 예수님께 입맞춘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갈보리에 미치지 못한 입맞춤일 뿐입니다. 선한 삶을 살고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이웃이 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닌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갈보리에 미치지 못한 입맞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 뿌린 몇 방울의 물이 자신에게 신비스러운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하늘나라에 가까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입맞춤은 갈보리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지도 않은 채 12살에 교리문답을 배웠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갈보리에 미치지 못한 입맞춤일 뿐입니다.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 역시 갈보리에 미치지 못하는 입맞춤일 뿐입니다. 작은 방에 들어가서 자신의 죄를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일 뿐이며 아무 효력도 없습니다. 그는 갈보리에 미치지 못한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해서 자신의 혼을 구원하기 위해 작은 성병과 포도주를 신뢰하는 것도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갈보리에 미치지 못하는 입맞춤일 뿐입니다.
침례교 부흥회 때 교회에 합류한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갈보리에 미치지 못하는 입맞춤일 뿐입니다.
종교적으로 한 모든 선한 행위와 모든 일들은 여러분을 하늘나라로 데려다 주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갈보리에 미치지 못하는 입맞춤일 뿐입니다.
유다가 저지른 실수는 갈보리에 이르지 않은 구세주께 입맞춘 것이었습니다. 유다는 오늘 아침 지옥에 누워 있으며, 유다는 지옥에서 타고 있으며, 유다는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지옥의 불길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갈보리에 이르지 않은 구세주께 입맞췄습니다. 유다는 갈보리에서 구세주께 입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지옥에 있습니다. 유다는 교회 회원이었지만 갈보리에 이르지 않은 어떤 것을 신뢰했기 때문에 지옥에 있습니다. 유다는 사도였지만 갈보리에 이르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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