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까지 주신 하나님 사랑
본문: 마태복음 1:23
< 성탄절은 벽을 깨뜨리는 날 >
가난한 한 하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옆방에 사는 아름다운 처녀를 짝사랑했습니다. 성탄절이 되었지만 그는 갈 곳이 없어 홀로 자기 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침대가 삐꺽거리는 소리와 이상한 신음소리였습니다. 벽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듣던 그는 엄청난 슬픔과 배신감에 사로잡힙니다. 순결한 처녀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옆방이 조용해졌습니다. 젊은이는 살 희망을 잃고 목을 맵니다.
다음 날, 경찰은 그 하숙집에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침대에 목을 맨 청년과 옆방에서 비소중독으로 침대에 엎딘 채 죽은 처녀였습니다. 처녀의 유서에는 `고독의 고통`과 `삶에 대한 혐오감`이 구구절절이 배였습니다. 두 영혼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습니다.
태초에 인간이 죄를 지어 생긴 것이 이 벽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벽이 생겼고, 인간 사이에 벽이 생겼습니다. 또한 환경과의 벽도 생겼고, 자기와의 벽도 생겼습니다. 이 벽이 있는 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게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벽을 넘을 수많은 방법들을 주셨지만 어느 방법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을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 벽을 완벽히 넘어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첫 번째 성탄절이 있게 된 것입니다.
성탄절은 `벽을 깨뜨렸던 날`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성탄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크리스마스 캐롤 들으며 즐거워하고, 밤늦도록 아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벽을 깨뜨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벽을 허물어뜨린 힘으로 사람과의 벽을 허물고, 자기와의 벽을 허무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가장 싫었던 사람에게 찾아가서 악수해주고, 찾아가지 못할 형편이면 마음속으로 찾아가서 간절히 기도해주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탄절은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을 생각하며 자기 자신과의 벽도 무너뜨려 비전과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수많은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모습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 주님의 성육신이 가르쳐주는 것 >
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신비로운 진리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 성육신의 진리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에는 성육신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몇 가지 교훈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 성육신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그 사랑을 잘 표현하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언어로 그 잘 표현한다고 해도 그 사랑의 만 분의 일도 잘 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자녀 삼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조건이 있습니까? 자세히 보면 우리는 하나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점을 하나님도 아시지만 우리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필요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일방적인 짝사랑입니다. `우리의 진심`과 `하나님의 진심`을 생각해볼 때 하나님은 사랑에 있어서 항상 손해 보시는 입장에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에도 딴 생각을 하며 대하면 큰 모욕인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모욕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모욕으로 받지 않으시고 "허허!" 웃으시면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긴 해야 하겠는데 인간의 언어로는 마땅한 단어가 없으니까 광야에서 놋뱀을 바라보고 살아난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민 21장), 그냥 `이처럼`이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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