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 교회를 구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는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유형 교회는 우리의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보이는 교회입니다. 반면 무형교회는 육적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유형 교회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바로 이 성도들의 공동체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형 교회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구원받은 자 개개인을 들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제를 나누고 있지만 이것은 영적이어서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존재하므로 유형 교회와 구분되는 무형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는 유형 교회나 무형 교회를 불문하고 교회가 추구하여야 할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보다 이상적인 교회로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오늘 우리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신 신비로운 환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환상은 소위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수의 환상이라고 불려집니다. 이미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았듯이 이 생명수는 성전의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와 죽음만이 존재하는 볼모지인 사해 골짜기로 흘러들어 강 주변의 땅을 기름지고 풍요로운 옥토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제공하신 새해에는 유형 교회인 우리 ○○교회는 물론, 무형 교회인 여러분 각자도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사해 골짜기와 같은 이 세상을 향하여 생명수를 흘려 보냄으로써 이 세상을 소생케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소생케 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1. 은혜의 깊이를 더해야 합니다.
성소로 들어가는 문에서 발원하여 동문 밑으로 스며 나온 물은 계속 동쪽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물은 흐를수록 그 깊이가 점점 더하여 갔습니다. 이는 천사가 손에 줄자를 가지고 물줄기를 척량하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천사는 일천척, 즉 550m가량 길이로 4번에 걸쳐 물 깊이를 척량하였습니다. 그 깊이는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는 정도였고(3절) 다음은 무릎에 오르는 정도였으며(4절) 세번째는 허리에 오르고(4절) 마지막에는 헤엄하여야 할 정도의 수심이었습니다(5절).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이 강물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성령의 은혜는 갈수록 더하여졌습니다. 혹자는 본문에 나오는 발목은 모이는 은혜로 보고, 무릎은 기도하는 은혜로 보며, 허리는 봉사하는 은혜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일한 물은 타인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넘치는 은혜로 보았습니다. 재미잇는 해석입니다. 사실 성숙한 성도는 모이기에 힘쓸 뿐 아니라 열심으로 기도하며 봉사에 힘쓰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해석을 취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갈수록 은혜를 더하는 신앙의 행보를 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해에는 가진 자는 허리의 은혜로 발전시킵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넘쳐나는 창일한 은혜 가운데 마음껏 헤엄치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됩시다.
2. 아라바로 흘러 사해에 이르러야 합니다.
성소로 들어가는 문에서 발원한 생명수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 즉 사해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였습니다. 적막하던 그곳에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아졌습니다. 사막과 같이 죽은 땅에 생명수가 들어가자 옥토가 되었으며, 죽음의 바다 사해는 풍요로운 생명의 바다로 변한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이 가진 영적 생명력을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향하여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로 인하여 어두운 이 세상이 밝아지고 썩어가는 도덕성이 살아나며 결국 영적 생명을 회복하는 자가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먼저 새해에는 교회와 성도 각자가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도록 합시다. 스스로의 은혜가 고갈되어 생명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은혜가 충만한 상태에 만족하며,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마치 변화산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황홀한 영적 경험을 하고 난 후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박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라고 말한 베드로와 같은 폐쇄적 신앙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변화산에 안주하시지 않고 문제 많은 세상으로 내려갔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교회와 성도각자도 예수처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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