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 1월을 영어로는 `January`라고 합니다. 이는 고대 로마의 칼렌더에서 한 해의 첫달을 `이아누아리우스(Ianuarius)`라고 부른 데서 유래합니다. 그런데 `이아누아리우스`는 바로 `야누스의 달`이란 뜻이 있습니다. `야누스의 얼굴`이란 말이 흔히 쓰입니다만, 야누스는 앞뒤 두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집이나 도시의 문을 지키는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은 시작을 나타내므로 야누스는 모든 사물의 시작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야누스의 제사는 정월 초하루에 지냈습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인들은 문의 신이며 시작의 신인 야누스를 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하였을까요? 이는 야누스가 문턱에 서서 한 머리로는 과거를 지켜보고 다른 한 머리로는 미래를 지켜보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누스는 인간이 만들어 낸 우상에 불과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문인 1월에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는 동시에 미래를 살펴보아야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으며, 우리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고침받은 앉은뱅이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새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미래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일으키는 자가 됩시다.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교의 좋은 기도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습니다(행 2:5,42,46). 그러나 그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행 4:22를 보면 그는 40세 정도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던 자에게 베드로가 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 말과 함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 앉은 뱅이는 발과 발목에 곧 힘을 얻고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감격스런 장면입니까? 이 앉은뱅이는 돈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성전 미문에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앉은 뱅이에게 돈은 절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돈보다 더 필요한 것, 즉 일어서고, 걷고, 뛸수 잇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처럼 이웃에게 그 무엇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것도 줄 수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미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이 세상 살 동안만 유지되는 육제적 생명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죽음의 자리에 처한 자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은 영적으로 걷고 뛸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 쥐위를 보십시오. 영적으로 무기력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강한 믿음의 대장부들이 될 수 있도록 신아으이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육체적 필요도 채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은 자선을 베풀되 가난한 자와(갈 2:10) 궁핍한자는(엡 4:28) 물론 원수들에게까지 베풀라고 하였습니다(잠 25:2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게 맞은 오랳와 미래를 이와 같이 이웃의 영과 육을 돌보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일어나는 자가 됩시다.
일으키는 자가 복됨같이 일어나느 자도 복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일으킴을 받은 자의 신상명세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으킴을 받는 과정과 그 이후의 행동은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먼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었습니다. 뛰어 섰습니다. 이는 앉은뱅이가 앉은 자리에서 위로 솟구치듯이 벌떡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또한 걸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하여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이 완전히 변하였던 것입니다. 전에 그는 성전 미문에서 꼼짝 못하고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거지 근성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에 대한 원망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걷고 또 뛰기까지 하였습니다. 성전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으로 담대히 들어갔습니다. 전에 받기만 바라면서도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을 향한 찬미를 올려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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