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땅속에 한줌의 진흙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포클레인으로 그 진흙은 파헤쳐지고 트럭으로 옮겨졌습니다. 다시 기계 속에서 잘게 부수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큰 떡메가 이리치고 저리치고 진흙은 완전히 짓이겨졌습니다. 알고 보니 자신은 도자기로 만들어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정작 고통은 그 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수천도의 활활 타는 화로 속에 들어가 한두 시간도 아닌 이틀이나 그을려졌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도자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는 흙이 어떻게 아름답고 귀한 도자기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진정한 변화의 과정을 예시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는 외면적인 단순한 치장이나 변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는 그야말로 으깨지고, 짓이겨지고, 잘게 부수어지고 수천도의 불로 완전히 태워지는 과정, 즉 자아는 깨지고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태워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스스로 이런 완전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의 참된 변화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외형적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개선이나 호전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성도의 변화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완전한 변화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의미로 세례 예식을 가지려고 합니다. 세례에서 물은 우리 옛사람의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례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떤 변화를 가져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세례 교육을 하면서 우리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목표나 삶의 가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나 자신과 내 신념과 가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본래의 살므이 자세와 목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일들을 끝내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외형적인 변화는 있을지 모르지만 돈을 벌고, 내 개인적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습니다.그러나 비록 같은 일을 하고,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이제 내가 쏟아내는 노력과 땀과 열심이 하나님께 영광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유익이 되는 아름답고 영화로운 일이 됩니다. 여러분, 직업의 종류가 하나님의 영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교역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직분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직업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을 하고 수입이 적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정직하고 진실하게 수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바란다면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체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얻기 위해 땀흘리십니까? 바라기는 여러분 자신의 일락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분들, 수고하며 땀흘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 동안의 삶이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인생이었다면 이제 돌이켜 하나님을 위한 삶,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각오하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세례식에 임하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다짐과 각오가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이 삶의 중심과 목표가 되게 하십시오. 이제 생을 이 시간부로 전환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2. 삶의 초점을 그리스도의 사랑에 맞추어야 합니다.
한 번은 지하철에 아이들이 시끄렇게 뛰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멍하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짜증을 참다 못해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도록 말합니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자리에 앉힙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오늘 아이들의 엄마가 죽어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그 순간 아이들과 그 아버지에게 향했던 사람들의 분노는 일순간 동정과 안타까움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이 떠들어 대지만 그 아이들을 짜증과 분노로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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