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성찬은 주께서 친히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행하여 기념하라고 친히 보이시고, 명령하신 의식은 성찬이 유일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성찬의 중요성은 시간을 넘어 항상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예식입니다. 또한 성찬은 입술로 전하는 복음 전파 만큼이나 중요한 눈에 보이는 복음 전파라고 불려져 왔습니다. 특별히 성찬에 대해서는 몇가지 학설이 존재합니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 속에는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들었다는 실재설과 떡과 포도주를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 떡과 포도주와 함께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존재하신다는 공재설과 성찬은 기념 예식일 뿐 그 안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기념설이 있습니다. 지금 대개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기념설을 믿고 그것을 정설로 따르지만 불과 1-2세기 전만 해도 이것이 심각한 논쟁의 대상이 될 정도로 큰 쟁점이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 성찬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 역시 이를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 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께서 명하신 성찬 예식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성찬은 단순히 떡을 떼고, 음료를 먹는 교제의 시간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전통을 따라 드려지는 형식적 예전도 아닙니다. 지금 거행하는 성찬식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당하며 죽으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며 이를 믿음과 진실함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실제적인 은혜가 임하는 귀한 시간인 것입니다. 비록 이 안에 주님의 살과 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떡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을 통해 되새겨야 할 성찬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새 언약 수립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언약이 무슨 언약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이 그저 언약의 축배를 들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언약이란 어떤 언약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과의 불완전한 언약인 율법을 대신할 새로운 언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서에 기록되 새 언약 갱신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이 의롭다 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모든 인간의 죄와 죽음을 예수님께서 죽음을 막으시고, 그분을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얻으며, 의롭다 인정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언약이 바로 주께서 말씀하시는 새 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것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본래 우리가 당할 저주와 심판, 죽음을 주님의 희생으로 폐하시고, 우리와 새롭게 언약을 맺으사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 소망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이를 기념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시는 성찬 예식도 이처럼 우리가 새로운 언약에 동참한 자임을 확인하고 기념하며, 되새기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언약은 결코 잊어서도, 지워져서도 안 될 생명의 언약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주께서 완성하신 새로운 언약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자주 예수님으로 인해 폐기되어 없어진 옛 언약의 정죄와 참소를 잊지 못하고, 죄책감과 영적 침체에 빠져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의 떡과 피를 나누는 성찬 예식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죄의 속박과 굴레들, 악한 습성들이 말끔히 씻겨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잊혀지고 지워져 가는 생명의 언약을 되새기고, 확신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가지신 친교의 만찬이었습니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들을 사랑하셨던 밤이었습니다. 이런 깊은 교제 속에서 떡과 포도주를 따르며 언약을 다짐하는 하나됨의 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최후의 만찬처럼 성도들이 서로 모여 함께 만찬을 나누며 그 날을 기념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가지는 영적 의미를 깨닫는 일일 것입니다. 성찬은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함께 하며,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인간의 교제가 아닙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이며, 일치인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