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한 사도들의 끝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열거하고 잇씁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 자신이 취했던 겸손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록하고 있는 것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지 않고 있는 고린도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게 하고자 함입니다. 즉 그저 세상에서 편하게 살고 교회에서 좋은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함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가졌던 잘못을 우리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느 사도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라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본문에 바울은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사명에 헌신된 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재정적 후원을 교회에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고전 9:6,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장막 만드는 일을 직접하여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행 18:3). 사실 바울 당시 헬라인들은 육체 노동을 경멸하여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바울은 전혀 개희치 않고 떳떳하게 그 일을 하였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이마에 땀을 흘리고 그 노동의 댓가로 살라야 하는 것이 본분임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 세상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이 세상의 삶에서 그 누구보다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중세의 수도사들이 "노동은 기도이다"라고 말하며 하루의 반을 노동에 하루의 반을 기도에 전념에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여러분의 일터가 바로 주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자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2. 핍박을 당한즉 참고
본문의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라는 표현은 베드로전서 2:23의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세상은 그분을 믿는 우리들도 욕하며 핍박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에 세상은 성도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난 이천년간의 선교역사를 보십시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늘 핍박과 수욕이 있어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새상의 핍박과 후욕을 당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맞서 싸워야 합니까? 아니면 세상을 회피하여 도망가야 합니까?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참고 견디며 오히려 그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핍박은 우리를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핍박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세상에 대하여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상에서 핍박과 수욕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참고 견디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본문의 `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에서 `권면하니`에 해당하는 `파라칼루멘`은 `친절하게 말하여 격려하다` 혹은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무례하고 악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여도 세상에 대하여 사랑과 진리로 행하여야 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의 핵심은 바로 복음이 될 것입니다. 복음이야 말로 희망없는 세상의 유일한 위로이며, 구원의 진리이며, 그들에게 베풀어야 할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죄악되고 완악한 세상, 척박한 땅에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막 1:8).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할 것을 위임하셨습니다(행 1:8). 그러므로 그분을 따르는 우리에게는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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