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조회수 : 1187    / 등록일 : 2009-01-22   / 출처(저자) :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희망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헬렌켈러의 말입니다. 이 말이 큰 도전과 감동을 주는 것은 시력도 잃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큰 장애를 극복하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여,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헬렌켈러의 말이기 떄문입니다. 여러분, 객차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고, 산더미 같은 짐이 실려 있다 할지라도 기관차가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하면 모든 객차는 기관차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소망이란 바로 무거운 객차를 끄는 기관차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인생의 짐이 많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할지라도 희망이 있는 인생은 결코 멈추지 않으며,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소망도 이와 같이 큰 힘을 발휘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소망이라면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핍박과 고난을 묵묵히 감당했던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처럼 갖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그가 가지고 있었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소망을 붙잡고,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 나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 가운데에서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소유하고, 그 소망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고난에서조차 영원한 소망을 붙잡고 달려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겉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육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생성, 성장, 소멸의 단계를 거칩니다. 자연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육체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고려말 충혜왕 때의 학자 우탁이 쓴 `탄로가`에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육체의 연약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여러분,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인간의 육체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연약해지고 결국은 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겉사람의 후패에 대하여 고민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결코 고민할 것도, 슬퍼할 것도, 아파할 것도 없음을 말하며 결코 썩지 않고, 낡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바라보는 인생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속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심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거듭난 영혼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식이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지금 당장 완전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마지막 때에 완전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빌 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육체는 끊임없는 인생의 고난과 세월의 흐름으로 약해져만 가지만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새로운 육체로 완성하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결코 좌절하지 말고, 슬퍼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큰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환난을 박으나 더 큰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 환난과 고난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았으며 또한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로서 말이 어눌하고 시원치 않는 약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고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하며 수많은 어려움과 핍박을 받았던 그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17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는 그많은 어려움을 `경한 것`으로 언급합니다. 그러한 모진 고통들을 그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까? 장차 다가올 영광이 어떠한 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그 모진 고통 속에서도 이루 말할수 없는 큰 영광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어진 현실로 인하여 결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왕궁의 부귀와 영화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왜냐하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음으로 얻게 될 상급이 더욱 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