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감사할지니

  조회수 : 2073    / 등록일 : 2009-02-02   / 출처(저자) :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말 : 한해의 끝자락을 맞을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입니다. `여러 가리조 일이 많은 데다 어려움도 많다`란 의미를 지닌 이 말은 너무나 많이 쓰이기 때문ㅇ레 진부한 상투적 용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가슴을 저미듯 아프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각의 가슴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부한 듯 느껴지는 이 말이 해마다 반복되어 사용되는 것은 각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 국가, 세계적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것과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하여 줍니다.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면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원망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사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일을 두고 원망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 해를 보내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원망의 사람이 아니라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읽은 본문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사역한 이후 유럽지역에서 두 번째로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이곳에서 다수의 회심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전도 사역은 불과 몇개월밖에 지속되지 못한 듯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집요한 박해 때문입니다. 바울은 박해를 피하여 베뢰아로 갔고 여기까지 쫓아온 유대인을 피하여 또다시 아덴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젖먹이와 같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염려하여 동역자 디모데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고린도에 가서 복음 전도 사역을 계속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귀환한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가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바로 본문과 같은 칭창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릐 어떤 면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하였는지를 살펴보며 우리도 한 해를 보내며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를 바랍니다.

1. 믿음의 역사로 인한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믿음의 역사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역사`로 번역된 헬라어`투 에르구 테스 피스테오스`는 `믿음에서 비롯된 행위`란 의미입니다. 사실 믿음은 내면적인 것이고 행위는 외면 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이 둘은 크게 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내면에서 생성된 믿음은 반드시 말과 태도와 행동을 통하여 외부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졌습니다. 데살로기가 교인들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을 때에 거짓되고 생명없는 우상을 가차없이 버리는 행돌을 보였습니다(살전 1:9). 그리고 유대인들의 심한 핍박 중에서도(행 17: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살전 3:8).
이제 우리의 삶을 되돌아봅시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죽은 믿음을 가짐으로 우리의 삶은 불신자와 같이 썩어질 열매만을 거두지는 않았습니까? 어린 아이의 믿음을 가졌으므로 장성한 믿음의 열매를 나타내지 못한것은 아닙니까? 우리에게 믿음의 진보가 있었다면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는 믿음의 진보를 이루도록 애쓰는 자들이 됩시다.

2. 사랑의 수고로 인한 감사가 있습니다.

둘째, 바울은 사랑의 수고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사랑의 수고`로 번역된 헬라어 `투 코프테스 아가페스`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수고`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서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는 성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나 가족이나 친구 혹은 주요 관심사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이끌림이나 애착을 나타내는 `필로스`가 아닙니다. 이는 사랑받을 자격 없는 죄인인 인간에게 다가가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신적 사랑인 `아가페`입니다. 즉 자기 희생적이며 이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수고`에 해당하는 `코푸`의 원형 `코포스`는 피곤할 정도, 곧 녹초가 될 정도의 고된 일을 가리킵니다. 성적인 사랑이나 가족간의 사랑도 많은 수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적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되 자신의 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열심히 실천하였습니다. 여력이 있는 것을 베푸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다 드리는 헌신의 정신으로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제 자신을 되돌아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