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능성이 끝나는 곳에

  조회수 : 1379    / 등록일 : 2009-02-05   / 출처(저자) :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어느날, 제가가 되기를 자원하는 제자 후보생이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들 후보에게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는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 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나갔습니다.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할 이유가 어디 있었을까요? 이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자질이 마음과 삶 속에 있는지를 프랜시스는 보기 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성도를 `순종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벧전 1:14). 그러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아만의 순종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교만을 물리쳐야 합니다.

9,10절은 나아만과 엘리사의 첫 만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나아만은 마병과 병거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엘리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내심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엘리사에게 보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는 엘리사의 집에 이르자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문 앞에 섰습니다. 아마도 엘리사가 맨발로 뛰어나와 자기를 영접하고 환대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실 한 나라의 군대 장관쯤 되면 어느 곳에 가서도 그러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태도는 그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니도 말았습니다,
그는 나아만을 영접하여 환대하기는커녕 방문도 열어보지 않고 단지 사환을 보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지시할 뿐이었습니다(10절). 이쯤 되면 `문전박대`라고 할만합니다. 나아만의 반응을 어떠하였을까? 11절 상반절에 의하면 "노하여 물러갔다"고 하였습니다.
나아만이 누구입니까? 그는 자기 나라를 침략하여 속국으로 만들었던 앗수르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하여 빛나는 공을 세워 아람 왕 벤하닷 2세로부터 일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군대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1절) 표현이 그의 위치와 성품을 잘 나타냅니다. 그런 그가 약소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문전박대`를 당했으니 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나아가는 태도를 보아야 합니다. 위협을 가하거나 어떤 군사적 목적을 위해 방문하는 것도 아닌데 그 많은 말과 병거를 왜 대동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치료를 받으러 가는 자신의 목적을 망각하고 오히려 세상적인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교만함에서 나왔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께 병 고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그 교만을 꺾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만함을 꿰뚫어 본 엘리사는 그의 교만함을 꺾고자 방에서 내다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교만한 자세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기적)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아만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까지 자기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력, 세상에서의 자랑거리를 내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가소롭고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분이나 명예, 경제적 능력 따위에 우리의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는 그분께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만함을 물리치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람의 생각을 극복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사환을 통하여 나아만에게 말씀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10절)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문둥병에서 나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쉽고 간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나아만은 분노하여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왜입니까? 역설적이게도 그의 치유의 조건으로 제시한 방법이 너무도 쉬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나아만은 엘리사가 제시한 방법이 너무 쉬운 것이기에 믿지 못하고 자기를 조롱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11절). 한마디로 엘리사가 제시한 방법이 자기의 생각과 너무 달라 순종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