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조회수 : 1532    / 등록일 : 2009-02-09   / 출처(저자) :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말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보렴, 세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꼬마야,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란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똑같아." 이것은 미카엘 엔데의 유명한 소설 「모모」에서 호라 박사가 모모에게 낸 수수께끼입니다.
호라 박사가 낸 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시간`입니다. 여기서 집으로 돌아오는 큰 형은 미래를, 이미 집에서 나가버린 둘째는 과거를 집에 있는 셋째는 현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고 있다는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처럼 양적인 지표를 나타내는 시간의 개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지표일 뿐 그 자체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시간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 양적인 시간이 아닌 질적인 시간을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시간을 지칭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카이로스고, 또 하나는 크로노스입니다. 카이로스가 정량적인 시간을 의미한다면, 크로노스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루 24시간의 카이로스를 살아가지만 또 누구나 24시간의 크로노스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24시간 중 1시간도 안되는 크로노스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로 하나님께 합당한 질적인 시간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흘러간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까지 우리의 모든 시간을 값지고 고귀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값진 시간들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구고자 합니다.

1. 과거를 벗어 버리십시오.

베드로는 3절에서 성도가 과거에 범했던 죄를 이야기 하면서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과거의 그늘에서 잘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소설「모모」의 수수께끼에서 과거가 현재의 형으로 표현되었듯이, 모든 우리의 과거는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나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나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말처럼 항상 과거는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그늘에 집착하고, 그늘에서 잘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잘못된 기억이 현재의 나를 공격하고, 파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를 알지 못하면,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안다는 것과 과거의 안 좋은 영향력을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것에 묶여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다른 말입니다. 특히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과 상처와 저주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입은 우리 성도들은 이런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우리에게 있었던 모든 옛사람의 기억과 영향력을 땅에 묻고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습관과 관습과 안주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미래는 하나님의 몫으로 인정하시고 맡기십시오.

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항상 현재에서 투자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다고 그 순서대로 점수를 맞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열심히 공부했고, 잘 아는데도, 피치 못할 일들로 인해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는 우리가 능히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능히 통제하고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삶조차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되,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교만함과 불신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 의뢰하고, 맡김을 통해 우리 인생의 불안과 초조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분께 전적으로 맡기고, 그 뜻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현재에 충실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현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고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미 우리는 과거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렇기에 과거에 얽매여 고통하고, 좌절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가장 현재에 충실하며, 집중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케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분명한 소망을 품고, 현실에 충실하는 성도가 진정한 성도임을 말씀해 주고 잇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극한 방탕에 빠지지 않고,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좇아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에 충실하며 집중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근심하지 않으며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맺는 말 : 교회사를 보면 성경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시간관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평생 고행을 하는 수도생활, 그리고 장래 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어진 삶의 책임을 저버린 극단적 종말론자들은 바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성경적 시간관을 벗어난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항상 과거와 미래를 단절하고, 현재를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가도록 우리를 종용합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살펴본 성경의 가르침과 같이 주어진 삶에 늘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