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선물

  조회수 : 1402    / 등록일 : 2009-02-24   / 출처(저자) :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 버트란트 러셀(B. Russell)은 그의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그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은 악하고 잔인한 신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은 하나님께서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오히려,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내려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삶 가운데 여러 가지 환난과 위험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도대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고민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겨운 일도 또 아무리 엄청난 고난도, 나중에 지나고 보면 다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시련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으로 포장된 축복` 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포장만 보면 고통 같지만, 그 포장을 뜯고 안을 살펴보면,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담겨 있는 귀한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이 어떻게 축복이 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되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난을 통해,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사람이 평안하고 형통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안 계셔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자기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교만해집니다. 어거스틴이 "인간의 교만은 태양을 덮는 검은 구름과 같아서, 그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잃게 만든다"고 했듯이, 그런 사람들은 좀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역경을 만나게 되면 자기 무능을 깨닫게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게 되고, 기도하게 되며, 신앙이 간절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겐 육신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칼빈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많은 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존번연은 옥에 갇힘으로 인해 「천로역정」이라는 기독교 역사의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었습니다. 죤 밀톤은 소경이 되는 고난을 통해 「실락원」이라는 명작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고난의 날에 철저히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더욱 귀히 쓰임 받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고난을 통해, 죄를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는 길을 잃은 양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자식으로서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국민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로서, 직분자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벗어나 자기 가고 싶은 대로 탈선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징계의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죄를 죄로 깨닫지도 못할 것이고, 죄에서 돌이키지도 못할 것이며, 결국은 영원한 지옥을 향하여 치닫게 되고 말 것입니다.
고난이 축복인 이유는 고난을 통해 죄를 깨닫고, 바른 길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당신을 섬기라고 내게 건강을 주셨건만 나는 세상을 위해서 전부 다 써버렸습니다. 이제 나를 일깨워 주시려고 나에게 병을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것은 영적인 귀머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고난의 날에 다시한번 자신을 돌이켜 보고 회개하고 돌이키셔서, 그 고난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축복의 계기로 승화시키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3. 고난을 통해, 은혜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사람이 평탄할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축복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고난을 겪으면서,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한 가지 한 가지가 얼마나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였는지, 감사할 일이었는지를 절절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물이 없어봐야 물의 소중함을 알고, 공기가 없는 곳에서야 공기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으로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지금 건강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도가 나서 길에 나 앉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칸 셋방이라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스펄젼은 "우리 신자들의 생활이 항상 풍족하고 또 막히는 데가 없이 고난 없는 생활만을 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참된 은헤와 위안을 절반도 모르고 사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단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난의 날을 통해 정말 지극히 작은 일에도 범사에 감사하는 참 신앙인이 되는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끝맺는 말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심은 하나님께서 악하고 잔인한 신어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고난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속 깊은 사랑을 헤아릴 수 있는 지헤ㅐ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통의 포장을 뜯고 그 안에 담긴 축복의 선물을 꺼내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러셀과 같이 껍데기만 보고 하나님을 정죄하면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고 고백하는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고난이라는 포장 안에 담긴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인하여 "나는 왜 기독교인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위대한 간증을 남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