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는 힘, 곧 이성에 두었습니다. 반면에,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였던 키에르케고르는 데카르트의 그 말을 받아서 "나는 괴롭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즉 그는 존재라는 것 자체를 고난으로 보았씁니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좀 염세적인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정말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로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살아가는 동안에 각양각색의 고난을 겪게 되지만 그 순간에 성도는 혼자 고난속에 버려져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고난받는 순간에 하나님은 결코 뒷짐 지고 가만히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고난받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은 고난 중에 처한 성도를 돌보십니다.
무디가 어떤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집에는 예쁜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무디가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성도님이 볼 때는 아이들 중 누가 가장 예쁩니까?" 그러자 그 어머니는 다른 방으로 가서 한 아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도 다 예쁘지만, 저는 이 아이가 가장 예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디가 보니, 그 아이는 장애아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다 사랑하되 특히 약하고 병든 자식을 더욱 애틋하게 사랑하듯이, 하나님도 모든 성도를 사랑하시되 특히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어려운 일을 계속 당하면, 친구도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심지어는 형제자매라도 그를 외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니만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귀히 여기시고, 크신 사랑으로 돌봐주십니다. 그래서 찬송가 411장에서도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라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혹 여러분 중에 큰 고난 중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럴수록 여러분을 더욱 사랑하시고 끔찍이 아끼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난 받는 그 순간에 여러분들을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시며 인자한 귀로서 여러분의 작은 심음에까지 귀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승리의 자리로 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고난 중에 처한 성도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위로해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래 `위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라칼레오`인데 이는 `곁에`라는 의미의 `파라`와 `부르다`라는 뜻의 `칼레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ㅜ이로라는 말에는 `가까이 불러서 곁에 머물게 하는 것` 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특별히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우리를 불러 그 품에 안아주시고, 우리 곁에 더욱 가까이 머물며 격려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그런 위로가 있기에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위로로 인해 고난 중에도 가슴에 넘치는 뜨거운 감격과 눈물, 환희와 기쁨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에 해리 로더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각 전선을 다니면서 군인들을 위해 위로공연을 가졌습니다. 군인들은 그의 노래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훗날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고난을 맞는 인간의 태도는 세 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비관함으로써 좌절하든지, 술을 계속 마심으로 파멸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슬픔을 가져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슬픔을 가져가 맡김으로써 큰 위로와 힘을 얻었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 속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다 가지고 나오셔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십시오. 다른 곳에서 위로를 찾지 마십시오. 참된 위로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로 새 힘을 얻어 고난을 이기고 축복의 길로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3. 고난 중에 놓인 성도를 강하게 하여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면제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보다는 어떤 고난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난은 그대로일지라도 우리가 훨씬 강해짐으로 인해 고난을 고난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에게는 곱셈 나눗셈이 어려운 문제이나, 대학생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닌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음이 약할 때는 한없이 큰 고난 같아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강해져버리면 그 고난이 우리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히 큰 믿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평상시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련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자중의 한 사람이 부쳐(Bucer)는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들에게 영웅적인 기질을 가지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놀라운 사람으로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옪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영적 비상(非常)이라는 위기가 닥칠 때 하나님은 그에 맞는 비상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능력을 구하십시오. 영육간에 더욱 강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하사 믿음이 강해지고 마음이 강해지게 하셔서, 그 모든 고난을 능히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게 해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끝맺는 말 : 여러분 중에 고난 중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하나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십니까?"라며 불평하고 계시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한번 믿음의 눈을 뜨고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지금 당신 곁에 계십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오셔서 여러분을 복돋아 주십니다. 본문 말씀처럼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위기에 처한 성도님들을 돌보고 계시고, 위로하고 계시며, 강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 바라보며 새 힘 얻으셔서, 큰 승리를 거두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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