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듯

  조회수 : 3462    / 등록일 : 2009-04-16   / 출처(저자) : 뉴비전설교자료사전


어느 소년이 산에 올라갔다가 독수리 둥지를 발견하고는 집에서 키울 생각으로 알 하나를 둥지에서 꺼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알을 품고 있는 닭의 둥지에 넣어 두었습니다. 얼마 후 알이 부화되어 새끼 독수리가 나왔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자신이 독수리인지 알지 못한 채 병아리처럼 먹고, 병아리처럼 걷고, 병아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닭장 위의 푸른 하늘에 독수리가 나타나 힘차게 날고 있었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그 광경을 보고, `나도 저렇게 날 수 없을까?`라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닭으로 생각했던 그 독수리는 다시 땅을 보고 그저 주변에 깔린 모이만 쪼아 댓을 뿐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 여러분도 여러분의 신분과 위치를 망각하고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세상에 속한 자와 같이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연약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강하고 담대하고 두 날개를 펴서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숨겨진 독수리의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훌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훌련시키십니까?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11절에서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훈련시키심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태생만 `독수리`가 아니라 훈련도 `독수리` 훈련하듯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관해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보금 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본문 11절은 하나님의 1단계 훈련을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독수리는 본래 벼랑 위나 낭떠러지같이 사람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둥지를 틀고는 그안에 솜털을 뽑아 아늑한 둥지를 만들어 새끼를 키웁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중지의 부드러운 털을 긁어냅니다. 그러면 둥지를 이루고 있는 나무가 새끼를 찔러 둥지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어미 독수리가 둥지를 해체시킵니다.
독수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리 독수리라도 어려서부터 나는 것을 연습하지 않으면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안락한 환경을 크게 어지럽히시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갈대아 우르에서 평안하게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큰 핍박으 통해 흩으셨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렇게 흔들어놓지 않으면 마치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와 같이 유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광야로 내몰아 거친 바람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후련시키심으로 강인한 믿음의 전사로 키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1. 사람에게는 현실 안주의 욕구가 강함(잠 6:9, 10)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2.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훈련시키기 위해 믿음의 순례를 명하심(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3. 때로 핍박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연단하기도 하심(행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4.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믿음의 진보가 없으며 도리어 큰심케 된(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본문은 하나님의 2단계 훈련 법칙을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날기를 배우고 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둥지 위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새끼는 어미를 보지 못하지만 어미 독수리는 둥지 위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성년식을 거행할 나이가 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갑니다. 단도를 하나 손에 쥐어 주고는 밤을 새우라고 당부한후 사라집니다. 소년은 숲 속에서 뛰쳐나올지도 모를 맹수와 싸울 태세를 갖춘 채 뜬눈으로 한밤을 새웁니다. 새벽이 되어 주변의 사물이 어슴푸레 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 소년의 눈에 제일 먼저 띄는 사람은 독화살을 준비한 채 아들에게 닥쳐올지도 모를 맹수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느라 나무 위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아버지입니다. 소년은 그 체험을 통해 한 단꼐 성숙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주심을 믿고 한 사람의 성년으로서 책임 있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잠시도 우리에게서 눈을 때시지 않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무고나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날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하기 위해 사랑으로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심(욥 23:9,10)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 하나님은 성도의 곁에서 항상 그 출입을 지시킴(시 121:5-8)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눈동자같이 지키심(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고아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4. 하나님은 다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심(시 121: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3.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본문은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3단꼐 훈련 법칙을 보여 줍니다. 어미 독수리는 바람을 일으켜 새끼를 업은 뒤 높이 올라가 떨어뜨립니다. 또한 새끼가 날기 위해 애를 쓰다가 떨어지게 되면 쏜살같이 내려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안전하게 받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강하게 훈련시키시지만 어려운 순간이 닥쳐오면 반드시 나타나 도움의 날개를 펼쳐주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경배하다가 불 속에 던져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인자를 보내어 결박된 끈을 풀어주시고 불 속에서 터럭도 상하지 않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또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빠지는 것을 면제시켜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자굴에 빠졌을 때 결코 그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평안함으로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는 불 가운데로 지나든지 물 가운데로 다니든지 심지어 맹수가 득실대는 굴속에 던져진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으로 상할 수 없음을 부여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성도가 연단 받다가 극한 상황에 이르면 어김없이 도움의 날개를 펴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훈련을 통해 우리를 그분의 일군으로 쓰시려는 것이지 멸망시키고, 패배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감당케 하심(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목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2.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닌 평안임(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3. 하나님의 보호로 어떤 위기나 환난 중에도 안전함(단 3:17 ; 고후1:10)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4.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아"라는 말씀은 마치 모든 후련을 다 받고 지친 자녀를 부모가 안전하게 업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연상케 하는 표현입니다. 영웅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훈련할 때에도 이와 같이 훈련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 훈련량으로 100km 혹은 200km를 달리고 나면 그 자리에서 완전 탈진하여 쓰러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솜뭉치 같은 몸을 감독이나 코치들이 그대로 안고 숙소까지 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극하고 끈끈한 감독과 코치의 도움이 있었기에 황영조는 바로 그 힘으로 `몬주익의 영웅`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훈련을 충분하게 다 마쳤을 때 그래서 더 이상 이러날 기력마저 잃고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은 부모님의 등보다 더 넓고 따듯한 등으로 우리를 얻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안전한 피난처, 쉴만한 안식처로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