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에 대한 연구보고

  조회수 : 836    / 등록일 : 2006-10-12   / 출처(저자) : 대한예수교 장로회 함동총회/ 제 87회 총회보고서 pp.380 ~ 415




3 최종보고

인간복제에 대한 연구보고

1997년 2월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이안 월머트 박사가 성숙한 양의 체세포에서 새끼 양 ‘돌리’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발표를 하면서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인간복제의 가능성에 대한 예시였다. 그 후 생명과학자들은 경쟁적으로 복제 동물을 생산했고, 인간 복제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하였다.
우리나라도 1998년 2월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젖소 영롱이를 복제하는데 성공했고, 그 해 12월 경희대 김승보, 이보연 교수팀이 시험관 아기 시술 때 폐기된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한 뒤 4세포까지 배양하는데 성공함으로 한국도 이미 인간 복제를 실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그러나 인간 복제에 대하여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고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생명, 특히 인간을 복제 조작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생명의 창조, 소유, 처분 권한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7절에 생명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생명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였다.(창1:26~28, 막8:36~38, 마16:26)
하나님은 계속하여 생명의 원천이시며(시36:9) 생(生)과 사(死)의 주(主)가 되신다고 하셨으며, 생명의 소유권과 처분권도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사람은 자기 생명이나 남의 생명을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다. 살인은 하나님의 소유권 침범이기에 금지하고 있으며(출20:13, 신5:17) 자살 또한 하나님의 소유권 내지는 처분권에 대한 침해로써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 볼 때 확실한 것은 인간은 결단코 어떤 형태의 생명도 창조나 조작할 수 없음이 명확한 사실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 기독교 윤리학적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것에는 분명히 반대를 해야 한다. 하나님만 생명의 주인이시고 섭리자이시지, 창조나 조직이나 생명의 변형에 관한 권한은 인간에게 없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생명 복제로 인해 인간 정채성의 혼란과 다양한 자손을 남길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 신학적 문제로 부모의 가치를 위협하고 결혼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야 할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위협받게 되는 것을 우리는 반대하여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생물학적 가치보다 정신적 영적 가치와 무엇보다 영생을 추구하는 가치가 더더욱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주어진 생명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유지하고 지키는데 힘써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집단적 견제를 분명히 해야 하며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역할을 인간이 수행하려는 것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윤리적 입장이 기술과 과학을 배척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학 기술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원리와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는 범주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윤리는 창조 세계의 원리와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는 범주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윤리는 창조 세계의 생명들을 사랑의 관계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윤리는 모두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청지기 역할을 할 뿐이다.
서로가 충돌할 수 없고 반대하거나 반론할 수 없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법칙에 순응해야 하는 것임을 인간들은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
3. 이상원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이며 기독교 윤리학 교수인 이상원 교수의 논문 중 중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성경적 관점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는 시편 51편5절 말씀에서 다윗이 어머니가 자신을 잉태하기 시작한 시점의 자신의 상태를 가리켜서 ‘나’라고 표현한다. 다윗은 또한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라는 시편 139편 13절 말씀에서도 모태 안에 있는 전 과정의 자신의 상태를 ‘나’라고 호칭한다.
누가복음 1장 41,44절을 읽어보면 누가는 엘리사벳의 복중에서 뛰노는 아이를 보고 ‘아이’가 뛰논다고 표현한다. 또한 마리아는 자기 태중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누가복음 1장 46-47절에서 노래한다. 마리아에게는 태중에 있는 태아가 ‘구주’였다.
이 본문들에 사용된 ‘나’, ‘아이’, ‘구주’와 같은 호칭들은 모두 뚜렷이 독립된 인격체를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따라서 하나님도 태중에 있는 태아들을 인격적인 태도로 대하신다. 하나님은 태에서 나오기 전에도 인간을 부르듯이 태아들을 부르신다.(렘1:5, 사49:1, 갈1:15)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이미 성령이 충만했다고 보고하고 있는데(눅1:15), 모태의 세례요한이 인간이 아니라면 성령의 충만하게 임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