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경 전도사 | 간증모음

  조회수 : 913    / 등록일 : 2006-10-24   / 출처(저자) : 간증모음/김준곤 목사-한국CCC 설립자, 성시화운동 총재


문준경 전도사 | 간증모음

내 신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신앙의 선배는 누구일까? 책에서 만난 많은 성자들, 내가 모시고 배운 흠모하는 스승들, 주님의 제자같은 사람들 가운데서 복합된 모자이크처럼 나의 신앙의식의 상(像)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심층심리를 분석해보면 각 사람의 의식의 뿌리는 인류의식의 공동의 호수에 맞닿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인류 전체와 크리스천 전원의 산물일 것이다. 물론 내가 소개하고 싶은 존경하는 스승들이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너무 많이 알려졌고, 만인의 사표인지라, 나와의 관계를 개인화시키면 오히려 그 분들을 격하시키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어 숨겨져 있는 무명의 순교자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내 신앙의 원초적 뿌리

문준경 전도사님은 성결교단에는 알려져 있지만, 한국 교회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6.25사변 때 공산당에게 전남의 낙도 중동리 모래사장에서 59세의 일기로 순교하신 분이다.

그 분은 내 아버지의 외사촌과 결혼하신, 우리 가족의 친척이셨다. 그 분은 지금은 예수님만으로 밤마다 철야로 지새우는 권사님이신 나의 어머니와 함께, 세상에서 나에게 맨처음으로 예수님을 소개해주신 내 시골 이모님같은 분이시고,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실 것 같은 분이시다. 또한 나의 가족이 학살되고 나도 죽다가 살아난 6.25때, 하마터면 같은 섬에서 순교의 동기생이 될 뻔했던 분이시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나룻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야 하는 우리 집에 그 분은 종종 찾아오셔서, 몹시 외롭게 하시던 우리 어머니와 머물면서 전도집회를 열곤 하셨다. 수수한 아주머니처럼 고무신을 신고 과자 선물을 듬뿍 가지고 오셔서 껴안고 기도해주시곤 하셨다.

초등학교도 다닌 일이 없고, 도레미파를 배운 적도 없지만, 그 분 특유의 낭랑한 목청으로 당시 이성봉 목사님이 많이 부르시던 허사가나 부흥성가, 천당가를 부르면, 우리 집 마당으로 동네 아낙네들과 어린이들과 강아지까지 다 모였다. 그러면 그 분은 일장(一場) 전도설교를 시작하곤 했다.

나는 당시에 그 분이 무식한 말을 한다고 생가했다. 예수는 4대 성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가르쳤는데,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오시면 잔치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이 왠지 모르게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내 신앙의 혈액검사를 하고 원초적 뿌리찾기를 해보면 그 분은 내 신앙의 지하실에 예수의 씨앗을 최초로 심어준 분으로 발견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죽임당한 여인은 가엾다. 버림받은 여인은 더 측은하다. 그러나 가장 불행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다."라고. 문전도사님은 친정도 시댁도 꽤 잘사는 집안이었다. 열일곱살 때 암태 문씨 집안에서 중동리 정씨 집안으로 시집왔는데, 결혼 초야(初夜)부터 버림받고 며칠 안되어 신랑이 집을 나가 다른 섬에서 소실을 얻고 살림하면서부터 잊혀진 여인이 되었다.

시집에서 20년을 살 때, 길쌈하고 바느질하며 들일하고 부엌일하며 극진히 시부모님을 모셨다. 효부라고 소문이 자자했으나 피눈물나는 시집살이도 참아야 했다. 손재봉틀로 삯바느질 해서 송아지를 여러 마리 사서는 여러 집에 나누어 주었다가 크면 이익을 서로 나눴는데, 모은 돈은 남편이 가져다가 딴 살림하여 소실과사는데 써버렸다. 하도 한이 맺혀서 기도문을 써서 천지신명에게 소지(燒紙)를 올린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다.

불쌍한 딸자식처럼 측은하게 사랑해주었던 시아버지가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땅바닥에 글을 쓰고 지우며 글을 익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가운데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삼년상(喪)을 치르고 목포에 사는 오라버니의 권유로 셋방 하나를 얻어, 20년 시집생활을 청산하고 손재봉틀 하나를 가지고 도시로 올라왔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 무렵 성결교단에는 오순절같은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목포에는 북교동교회에서 이성봉 목사님이 부임하여 축호전도니 하며 부흥성회에 불이 붙은 때였다. 문준경 전도사님이 그 전도팀의 그물에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님을 만났다. 이성봉 목사님이 그에게는 직접적인 천사였다. 천국이 있었다. 눈물의 샘이 터졌다. 항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예수의 뒤로 발 곁에 서서 울고 눈물로 그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씻고 입맞추었던 여인 속에서 문 전도사님의 삶의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기에 그토록 오래인 그리움이여!"(어거스틴의 고백). 늦게야 님을 만나나 그 분에게는 밤낮의 구별이 없었다. 밤을 살고 새벽을 살며 열심히 배우고 교회를 섬기며 전도를 했다.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었다. 그 나이 37세 때였다. 신앙성장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교회집회, 장례식, 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