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크리스마스

  조회수 : 795    / 등록일 : 2006-11-27   / 출처(저자) : 한 태 완 목사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


2개의 크리스마스


존 데이비라고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12월에는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X-Mass와 Christmas 라는 것입니다.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고 지키는 크리스마스는 X-Mass 입니다.
X는 부정적인 표시이며, 또 미지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와의 만남이 아닌, 그 무엇X와 만나기 위해 모두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12월24일 / 직장 동료들과 술 마시고 집에 와서 잠잤다.
12월 25일 / 교회에 갔다 와서 친구 만나서 술 마시고 돌아와 잤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세속화되고 타락했으며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 주의자들인 퀘이커 교도들은 1640년부터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행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성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 입니다.
예배란 단지 시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즉 내 마음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관입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기뻐하며 찬양하고 가장 높은 가치의 경배를 주님께 드려야합니다. 즉 우리의 삶이 언제나 예배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참뜻

몇 년전 "가이드포스트"지에 실린 글입니다. 윌리라는 소년이 크리스마스 연극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능이 조금 떨어져 4학년에 다녀야 할 나이에 2학년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키가 크고 마땅한 배역이 없어 여관집 주인역을 맡았습니다.
문 앞에 턱 버티고 섰다가 마리아와 요셉이 오면 "방 없어요"하고 들어가 버리는 역입니다. 한 달이나 연습한 끝에 성탄절이 되어 공연을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왔습니다. "주인님, 방 하나만 빌려 주세요.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아무데서도 안 받아 줍니다. 부탁합니다." 윌리는 퉁명스럽게 "빈 방 없어요, 딴 데나 가 봐요!"하고 맡은 역을 잘 소화해 냈습니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안으로 퇴장해야 할 윌리가 처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요셉과 마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각본에도 없는 대사를 갑자기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님, 마리아님, 가지 마세요. 사실은 우리 안방이 비어 있어요. 그 방을 쓰시란 말이에요!"
순간,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처럼 뜻깊은 성탄연극은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안방을 그리스도께 내어 드립시다. 내 가장 소중한 마음의 방을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말구유에 오심은 무능해서가 아니고 천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온유하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생명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오늘 이 성탄일에 주님을 마음 가득히 영접하시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는 기쁜 소식이 제사장이나 혹은 권력있는 유대총독에게 먼저 전하여지지 않고 구태여 목자에게 전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예수님의 탄생소식이 전달될 때에 목자들은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양 틈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진실로 우리의 참 목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여 저주를 받아 마귀에게 찢기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강림이 목자들에게 전해진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때로부터 영원토록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요10:2-4) 여기서 보면 예수님이 통째로 양무리를 불러 인도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하시고 부르시며 그 처지에 따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목자가 양을 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라고 하였습니다. 목자가 양과 함께 있거나 인도하며 다녀도 소용없습니다. 반드시 양을 치는 목적이 있어야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