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용납하는 길
이문희 목사(광천교회)
미국 서부개척 시절 텍사스 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무법천지인 그 때에는 총을 난사하는 등 많은 살인이 저질러져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제정,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덕망 있고 선량하고 이웃으로부터 존경받는 아주 온순한 한 청년이 술집에서 실수로 살인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제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온 동네 사람들은 그의 사람됨됨이를 익히 아는지라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해서 구명 운동에 나섰다. 모든 사람이 서명한 탄원 덕에 드디어 특별사면을 받게 되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들고 감옥을 찾았을 때 이미 그 청년은 예전의 청년이 아니었다. 얼마나 포악해졌는지, 게다가 청년은 사면장마저 거부해버렸다. 자신을 구하려는 동네사람들의 선의를 저버린 채, 그는 사형에 처해지고 만 것이다.
그가 왜 이래야만 했을까? 양심의 가책 때문이다. 누구의 위로도 받아들일 수가 없고, 누가 아니라 해도 자기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누가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해도 사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요, 누가 나를 용서한다고 해도 그 용서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는 마치 자살하는 사람처럼 그대로 사형집행을 받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정당화시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네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나의 죄인 됨은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살면서 잘 먹고, 잘 입고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긴 인생의 여정을 통해 볼 때 그런 것들이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고 또한 누리고 있다해도, 내가 나를 용납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이다. 아무리 많은 미사여구로 사람들이 나를 포장해도 내가 나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 한 후 동산 가운데로 숨어 들어갔다. 벗은 것을 알고 나뭇잎으로 옷을 해 부끄러움을 가려보았다. 그러나 아담을 괴롭힌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용납되지 않는 자아이다. 이것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떤 사상도 제도도 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이제 성탄의 달이 시작된다. 벌써 백화점과 호텔 등 시내 곳곳에는 요란한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를 용납할 수는 없다.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되는 내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내가 용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