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병원을 열고 환자들을 돌보던 슈바이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프랑스의 포로가 되어 독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당시 랑바레네는 프랑스령이었고, 슈바이처의 국적은 독일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로 돌아온 슈바이처는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의약품을 살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는 유럽 곳곳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오르간 연주회를 열어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울 돈을 모금했다.
마침내 1924년 랑바레네로 다시 돌아간 슈바이처는 그야말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병원을 지을 나무를 손수 운반하고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세우는 힘든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민들 역시 다시 돌아온 슈바이처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이 세워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슈바이처를 도와 함께 일하겠다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왔다. 신이 난 슈바이처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슈바이처가 새벽 4시가 넘도록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동료 의사가 걱정이 되어 말했다.
"선생님, 하나의 양초 양끝에 동시에 불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낮에 열심히 일했으니 밤에는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자 슈바이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양초가 충분히 길기만 하다면 양끝에 불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그에게 주어진 양초는 아주 길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불볕처럼 내리쬐는 아프리카의 태양과 갖가지 풍토병 아래서도 건강하게 90살까지 환자를 돌보다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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