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스클리프 경은 어려서부터 글에 소질이 있어 15세가 지나자 여러 신문에 자주 기고하여 독자들은 그가 상당한 문필가인 줄 알았다.
그는 18세에 [청년]이란 잡지의 편집 일을 하면서 브레이크라는 부호를 취재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배운 것도, 재산도 없었지만 신발 바닥에 정을 쳐서 보호하는 아이디어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노스클리프는 노인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브레이크 선생님은 백만장자시라지요?"
노인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아니오. 그보다 더욱 부자일 것이오."
"어떻게 그런 거금을 버실 수 있었는지요?"
"나는 무슨 일인가 찾아내 돈벌이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소. 오직 그 일만 생각하고 걸어왔지요."
이 한 마디를 듣고 노스클리프는 깊이 깨달았다.
"참으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여기에 있었구나.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는 생각을 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지. 한 가지만 생각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 그렇다면 내가 걸어갈 길은 신문밖에 없어."
1894년 그는 드디어 신문사업에 착수하여 파산 직전에 있는 `London Evening Press`를 복구시켰다. 같은 해에는 [데일리 메일]을 창간했고, 1900년까지 100만 부를 발행하는 당시 최대의 신문을 만들었다. 1903년에는 [데이리 미러]를, 1905년에는 파리에서 [데일리 메일](대륙판)을 발간했으며, 1908년 [런던 타임즈]의 대주주가 됨으로 영국의 유력 신문은 그의 영향력은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세계의 신문 왕`이라 불리게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로이드 조지 수상을 도와 논진을 펴서 독일 황제 카이젤로부터
"나는 연합군에 의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노스클리프의 신문에 진 것이다"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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