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받고 용납하며 성숙하는 사람

  조회수 : 1657    / 등록일 : 2012-09-18   / 출처(저자) : 크리스천 인용백과사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에게는 평생 동안 후회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여린 장박사가 여자 간호사의 뺨을 때린 사건입니다.
경희 의전에 수련의 생활을 한 지 4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기려는 후배가 상당수 들어오면서 그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제법 선배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특히 그리 많지 않은 한국인 후배들이 어떤 보물보다도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실수를 해도 귀여워 보이고 어떤 잘못을 해도 감싸주고만 싶었습니다. 그것은 일제 하에서 민족애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일본인 수련생이나 간호사들에게 대해서는 이유 없는 증오심이 끓고 있었고, 아무리 사랑의 예수를 따르고자 해도 이런 감정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국인 수련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을 마치고 병원 안에 있는 세면대로 우루루 몰려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워낙 화장실이 좁다 보니 늦게 온 사람은 다 들어가지 못하고 간호사실에서 땀을 흘리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소독해 준 거즈를 한 장 집어서 그것으로 이마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고 그것도 모자라 코까지 풀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썩 좋아보이는 광경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일본인 주임 간호사가 얼굴을 찡그리고 투덜거렸습니다. "마아, 이야라시이와네, 센세이!"(아이, 정말 싫어요, 선생!) 이 말은 옆에서 듣고 있던 기려에게는 흡사 "아이, 야만스러운 조센진!"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기려는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겨우 억눌러 참았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크게 한번 보복해 주리라고….
며칠 후, 그가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기려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한 젊은 간호사가 침대의 시트를 꿰매고 있었습니다. "간호사! 꿰매는 것은 나중에 하고 내 일부터 거들어주세요." 기려는 이 말과 함께 진찰을 위해 그녀의 손에 있던 시트를 침대 위에 폈습니다. 그랬더니 이 젊은 간호사는 언짢은 표정으로 그가 펴놓은 시트를 도로 접어 다시 찢어진 곳을 꿰매려고 하였습니다. 순간 기려는 자제력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간호사의 뺨을 후려 갈겼습니다. 그리고 당장 그 거만한 주임 간호사를 불러 "도대체 간호사들을 어떻게 교육 시키길래 이 따위요?" 하고 면박을 주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지금이…." 느닷없이 뺨을 맞은 간호사의 불덩이처럼 붉은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려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주임 간호사에 대한 분풀이로 이 어린 간호사의 뺨을 때리다니….` 순간적으로 기려는 자신의 인격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스승인 백인제 교수에게 가서 사표를 내면서 무릎을 턱썩 꿇었습니다. "선생님, 전 아무래도 의사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자의 사정을 듣고 난 백 교수는 "너답지 않은 일을 했구나!" 하면서도 이렇게 위로해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네. 사표를 내고 싶을만큼 가책을 받았다면 앞으로 그런 실수가 없도록 노력하게. 그리고 의사란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함을 명심해야 하네."
다음 날, 그 간호사에게 사과하러 간 기려는 뜻밖에도 그녀가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부랴부랴 병실로 찾아갔습니다. 간호사는 장티푸스에 걸린 전염 병동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어제 침대 시트를 꿰매고 있을 때부터 이미 정상이 아니었음을 기려는 몰랐던 것입니다. 평소 기려의 온화한 성품을 잘 아는데다 누구나 방문하기를 꺼리는 전염병동에까지 찾아 온 이 조선인 의사를 간호사는 존경의 눈빛으로 맞았습니다.
기려는 날마다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을 하는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되씹으며 깊이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그 간호사가 완쾌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 간호사는 일주일 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기려는 이 일을 통해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사랑하기로 하나님께 약속드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용납 받고 용납하면서 성숙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