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육의 모범

  조회수 : 425    / 등록일 :    / 출처(저자) : 상동교회



제 목 : < 예화 > 기독교 교육의 모범
구 절 : 레 10:11 삼상 12:23


김약연이 세운 규암재(규암재)는 1908년에는 명동서숙, 이듬해에는 명동
학교로 발전하였는데, 이상설이 세웠던 서전의숙과 연합하였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기독교 학교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09년 4월 27일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재면이 신임 교
감으로 있으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했다. 그는 평양 숭실학교, 서울 상동교
회의 청년학원,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출신으로서 명동학교에서의 성경 교
수가 그의 취임 조건이었다. 그 때부터 `신.식.병'(신.식.병)을 교육이념
의 토대로 삼던 것을 `신.망.애'(신.망.애)로 바꾸고 본격적인 기독교 교육
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황의돈. 장지영. 박태환 등 서울 상동청
년학교 교사출신들을 평교사로 초빙해 와서 기독교 민족교육이라는 이상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독교적 민족교육은 훗날 일제에 의한 명동학교
의 폐교 이유에서 그 성과가 여실히 나타난다.
"명동학교는 지리 시간에 조선을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지도를사용한다.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사용한다. 철저한 항일교육을 시킨다. 입학시험 응
시자 중 독립정신.민족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학생은 탈락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