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홀츠만은 가난한 운전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난 횡재가 ?굴러 들어왔다. 자그마치 5천만 달러. 노벨 문학상의 상금의 5만 달러라고 ?하니까 계산하면 1천 개의 노벨 문학상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숫자상으론 ?과언이 아니다.
홀츠만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거부였던 삼촌이 사망하면서 5천만 달러나 ?되는 유산을 그에게 물려 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유산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지켜야만 했다. 10년간의 근면한 생업이 그것이었다. 홀츠만은 ?5천만 달러를 구름 위에 올려 놓은 채 그 밑에서 10년 동안 성실하게 차를 ?몰았다.
마침내 기한이 차고 5천만 달러는 어김없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이제 이 ?돈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그는 우선 맘에 드는 쾌속정 3척을 4만 5천 달러에 사들였다. 그러고는 ?각선미가 훌륭한 아름다운 비키니 아가씨들을 쾌속정에 태우고 플로리다 ?주의 한 항구를 떠났다. 비미니라는 섬까지 86.4킬로미터를 유람하면서 ?그가 한 일은 백달러짜리 지폐를 물 위에 뿌리는 것이었다.
백 달러면 원화로 8만원 가까운 돈이다. 앞에서 세종대왕의 근엄한 ?얼굴이 있고 그 뒤에는 젊은 부처께서 은은히 숨어 계신 1만원 짜리 빳빳한 ?지폐를 댓장씩 소용돌이 치는 물 위에 뿌렸다고 생각해 보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돈맛에 신들린 인간이 마침내 물 속의 고기들에게까지 지폐의 위력을 ?가르쳐 주려고 한 것일까?
그러나 스튜어트 홀츠만은 마론 부란도 못지 않는 훌륭한 배우다. 그의 ?행위는 하나의 근사한 연기며 상징이다.
벼락치듯 돈더미에 올라 앉은 인간의 태도를 지극히 노골적으로 그러면
서도 익살맞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 뿐이 아니라, 갑자기 부자가 돼 버린 가정. 사회, 국가들은 오늘날 ?홀츠만의 연기를 실연하고 있지 않는가? 소비는 미덕이라고 처음엔 그 말이 ?그럴듯하여 한번 그래봤다가 차츰 그것이 사실로 돼가는 듯한 착각 속에서 ?마침내 흐르는 물에 배설하듯 지폐를 뿌린다.
산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아침 점심 저녁을 줄곧 라면으로 때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잔디로 덮힌 마당에 비취 파라솔이 울긋불긋하고 파란 ?물이 찰랑대는 푸울에서 수구를 즐기는 꼬마들의 첨벙대는 소리를 스르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타 위에서 듣는 젊은 신사와 그 부인도 있다.
홀츠만이 쾌속정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폐를 뿌리고 있을 바로 그때 ?아프리카 검둥이들은 하루에 백 명씩 굶어서 죽어 가고 있다. 홀츠만과 ?검둥이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형편이다.
홀츠만은 돈을 사랑했을까? 10년 동안 운전사라는 어려운 생업을 꾸준히 ?지키면서 그는 아마도 삼촌이 남기고 간 5천만 달러는 한시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5천만 달러는 그에게 약속된 재림주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 성도들
과는 좀 다르게 계약을 맺고 있었다. 10년, 3,650일이 지나면 재림주는(법
적으로) 오게 돼 있었던 것이다. "때가 이르매" 그는 마침내 홀츠만에게 ?강림했다. 홀츠만은 아마 전신으로 그를 영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재림주를 박대하기 시작했다.
부라보!
마침내 홀츠만은 재림주를 죽이기 시작했다. 물 속에 그대로 생매장을 ?시키고 혼자서 결정을 내렸다.
돈에 대한 지극한 원망이 순식간에 돈에 대한 무미건조한 혐오로 바뀐 ?셈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오늘의 인간들이 시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어 버렸다.
금전에 대한 원망과 혐오가 공공연하게 짬뽕이 되어 뒹굴고 있다. 달리는 ?쾌속정 위에서 지폐를 뿌리는 45세의 사나이. 스튜어트 홀츠만에게 우리는 ?그 실체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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