죤 뉴턴(John Newton, 1725~1807) 목사가 1774년에 작시했다. 본래 토요일 저녁예배에 사용하기 위해 작시했던 것을 주일 아침예배용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개주했다.
1절 한주간 세상에서 고달프게 시달리던 우리가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을 감사드리듯 감사해야 하고 주의 전에 나와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잊을 수 있는 안식을 주시니 감사해야 하며 위로와 용기와 기쁨을 주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2절 알게 혹은 모르게 지은 죄를 씻음받기 위하여 용서와 은총을 간구하며 세상 근심에서 놓임받기를 간구하고 있다.
3절 우리가 하늘에 가서 맛볼 영원한 잔치를 맛볼 수 있게 해달라는 가구로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수성찬임을 말해주고 있다.
4절 이 찬송의 클라이막스요 작시자 뉴턴 목사의 복음주의적 신앙을 드러낸 것으로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시기 위함이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기 위함이며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작시자 뉴턴 목사는 172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부친을 따라 선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거친 바다 생활 속에서 심히 방탕해졌고 한대 노예로 팔렸던 그가 노예 매매사업까지 자행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 속으로 뛰어든 그는 목회준비를 하여 목사가 되었고 많은 회중들에게 끊임없는 회개의 간증 설교로 큰 은혜를 끼쳤다. 그는 1780년부터 런던의 성 매리 울노쓰 교회에서 1807년 그가 세상을 마칠 때까지 28년간을 시무했다. 그는 많은 찬송시를 썼는데 1779년에 펴낸 [올니 찬송가]에 그의 찬송가 281편이 실려 있다. 그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비문을 써달라고 유언하기를, "한 때 불신자였고 방탕자였으며, 아프리카 노예의 종이었던 목사 죤 뉴턴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자비로 살아남게 되었고, 소생케 되었으며 용서를 받아 오랫동안 그가 멸하려고 애썼던 그 신앙을 전할 사명을 받아 근 16년간을 버킹컴셔 올니에서 시무하고 27년간을 이 교회에서 시무했다. 켄트의 채탐 출신의 죠지 캐틀렛의 딸 매리(Mary)와1750년 2월 1일 결혼했으며 1790년 12월 15일 그녀를 주신 주님께 그녀를 양도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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