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스 웨슬레(Charles Wesley, 1707~1788) 목사의 찬송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자료가 없다. 다만 이 찬송의 내용으로 보아 웨슬레 목사 형제들이, 영국의 신앙 운동을 할 당시의 비참했던 사회상과 주께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부르짖던 그들의 설교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18세기 전반의 영국의 교계와 사회상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한심스러운 것이었다. 영국 교회 성직자들은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다 모리 행위에 가담하여 돈과 쾌락에 깊이 빠져 있어서 성별된 그들의 직무와는 관계없이 타락과 교계의 무기력화를 노골화 하였다. 이런 성직자들은 그들이 돌볼 교구 성도들의 영적 책임은 아랑곳없이 재산을 늘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다. 교회의 고위 성직들은 모두 돈으로 매매되었고 좀더 중요한 "삶의 터"인 교구는 뒷거래에 의해 취득 되었다. 윌트셔의 어떤 교구 사제는 연 300파운드라는 거액을 받았으나 그곳은 명복상의 교구일 뿐 교회도 사제관도 없는 곳에서 돈만 받았다. 이런 교구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양심적인 소수 성직자들은 가난에 허덕였다. 사실상 웨슬레 목사 부친 사무엘 웨슬레도 유능하고 검소하며 매우 근면한 성직자였으나 생활에 쪼들려 빚진 돈을 갚지 못해 여러달 동안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교구 성도들은 굶주려 죽게 되었는데 성직자들은 십일조 외에 국가 세금 수입으로 고액의 봉급을 받아 치부하였다.
이런 때에 웨슬레 목사가 "웬 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고 마귀만 좇다가 죄값으로 지옥 형벌받겠구나.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 너도 타겠구나"(1,2,3절)라고 애원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독한 술에 취하여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고 예술과 연극은 천박한 질로 떨어졌고 극장은 술집과 매음굴로 둘러 싸였다. 뿐만 아니라 잔인한 스포츠를 즐겼고, 어린애들은 어르들의 불성실로 엄청난 수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보겠구나"(4절)라고 한탄했던 것이다. 이런 비참한 웨슬레의 심령에 먼저 뜨거운 불을 주셨고 그 불이 요원의 불길이 되어 전 영국을 흽쓸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신앙운동은 쓰레기같이 더러운 사회악을 태웠으며 신앙의 통로를 정화하여 마침내 그의 종교개혁은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동포여 그리스도께서 너를 사랑하시니 주께로 오시오"(5절)라고 찬송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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