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장(구 414장) 주의 사랑 비췰대에

  조회수 : 1633    / 등록일 : 2009-02-24   / 출처(저자) : 찬송가와 해설


캐리 브렉(Carrie E. Breck, 1855~1934) 여사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윌리엄 커크패트릭(William J. Kirkpatrik, 1838~1921)이 작곡하였다. 주의 사랑의 빛 속엔 기쁨과 평화가 있으니 우리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절 그리스도의 사랑 만능을 노래하는 가운데 심령의 평화와 광명을 노래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랑의 빛은 우리 모든 인간의 심령 속으로 스며들어 공허하고 혼돈하여 어두웠던 상태를 밝게 비춰주고 있다. 이 사랑을 체험한 자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후렴 주의 사랑이 우리 심령에 밝게 비쳐오니 자연히 기쁨과 평화로 가득하게 되며 노래가 터져나온다. 따라서 나의 기쁨과 평화로 인해 내 이웃에게까지 기쁨과 평화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2절 주님의 사랑의 햇빛을 받은 자의 성화된 생활면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백설로 우리의 허물을 다 덮어버린다면 우리의 마음은 줄거울 수밖에 없고 그러한 것들에서 오히려 더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3절 우리에게 주님의 밝은 사랑의 빛이 비쳐온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없다. 이 사랑의 깨달음이 크면 클수록 감동이 크고 축복이 큰 것을 알수 있다. 땅속에 파묻힌 밀알이 흙속에서 죽어 썩어져야 새싹이 나오듯,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녹아지고 정욕이 썩어져야만 감격의 삶이 되살아 날 수 있다.
4절 주의 사랑 비쳐오면 찬란한 광채를 갖게 되고 주의 사랑 비쳐오면 참되고 친절한 우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위대한 사랑의 빛을 발한 일본의 위대한 성자 가가와 도요히꼬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거의 굶어 죽게 된 어려운 삶에서 부모들한테 자주 매질을 당하곤 하였다. 그는 두 미국 선교사를 만날 때까지 그토록 사랑이 없는 불행한 세상에서 살았다. 이간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의 힘보다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을 선교사들로부터 배웠다.
1909년 크리스마스 전야 가가와는 일본 신가와 빈민굴의 한평짜리 오두막으로 이사했다. 온갖 더러운 벌레들이 우글대는 빈민굴에서 11,000명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의 모든 수입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으며 그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돈을 벌기 위해 굴뚝 청소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였다. 그리하여 굶주린 사람들은 쉬지 않고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고 그는 자신의 먹을 것까지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가가와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마다 더욱더 큰 사랑으로 보답해 주었다. 그는 그 빈민굴을 "내 작은 빈민 왕국"이라고 부르며 주일 학교를 시작하였다.
가가와는 휴지 조각에다 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한때 베스트 셀러(Best Seller)가 되었던 유명한 [사선을 넘어서]였다 그 이익금을 빈민굴 사업에 사용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계속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국가적 도움을 호소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1927년 일본의 노동조합을 처음으로 결성하였으며 1929년 이후에는 전쟁에 대한 항의로 여러번 감옥을 드나들었다. 그가 출옥되어 있는 동안 고아원과 농업조합을 조직하여 정착민을 도우며 여러 교회를 설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거의 실명 상태가 되어 빈민굴로 돌아갔다. 빈민 왕국에서 글을 쓰고 있던 가가와가 기자들에게 말하기를 "당신 자신을 주시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때 아낌없이 너그러이 주시오"라고 하며 그의 사랑의 신조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햇살이 비치는 곳은 어디나 천국이요 어둠이 없다.
작시자 브렉 여사는 1855년 1월 22일 미국 버먼트주에서 태어나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정착했는데 독실한 장로교인이었다. 1884년 후랭크 브렉씨와 결혼하여 딸 다섯을 두었다. 브렉 여사는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사는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무려 1400편이 넘는 많은 찬송가와 복음 성가를 틈틈이 썼다. 그는 자신이 찬송시를 쓰는 일에 관해 말하기를 "시를 쓰는 일이 내게는 더없이 기쁜 일이지요. 어린애를 재우거나 품에 안고 바구니를 고치거나 청소를 하거나 또는 부엌에서 그릇을 씻다가도 영감만 떠오르면 써내려 갔지요. 이와 같이 어떤 상황하에서도 기회만 있으면 시를 구성해 냈읍니다"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시재가 뛰어나 한손에는 늘 노트를 들고 시를 썼다는 것이다. 그의 신앙을 모두 시로 표현했던 것이다. 5명의 딸 중의 한 명이 어머니에 관해 "어머니는 평생 신앙심이 깊은 장루교인이 셨으며 예리한 리듬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하였읍니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1934년 세상을 마칠 때까지 미국의 신앙 부흥시대에 많은 찬송시를 써서 널리 애창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