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장(구 419장) 구주여 광풍이 일어

  조회수 : 1902    / 등록일 : 2009-02-27   / 출처(저자) : 찬송가와 해설


1874년 이 찬송가의 작시자 매리 앤 베이커(Mary Ann Baker 1831~1022)양에게 감당할 수 없을 큰 폭풍이 있은지 얼마 후 그 교회 음악 지휘자 호레이시오 리치몬드 파머(Horatio Richmond Palmer, 1834~1907) 박사가 당시 주일 학교 공과 "그리스도께서 폭풍을 잔잔케 하심"을 오래 간직하는데 필요한 찬송시를 써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성경 말씀은 막 4:37~39이었다. 베이커는 최근 그녀에게 있었던 경험이 그 찬송시를 구성하는 영감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재빠르게 경험한 비극을 통하여 한 찬송시를 써내려 갔던 것이다. 파도가 흉흉했던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공포에 떠는 제자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신 예수님의 그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폭풍도 잔잔케 하시고 평안을 주셨다. 세상에서 우리가 풍랑을 만나 주님을 부르며 주님은 친히 그 폭풍을 잔잔케 하시고 평안을 주실 것을 믿기에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 내려간 것이다. 이 찬송이 나오고 7년 후인 1881년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대통령이 된지 불과 4개월 만에 찰스 기토우라는 청년이 쏜 흉탄에 쓰려져 2~3주를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전국의 크리스챤들은 대통령이 부디 살기를 기도하며 이 찬송을 열심히 불렀다. 대통령은 1881년 9월 19일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나 온 겨레 속에 메아리쳤던 이 찬송은 슬픔을 이기려는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깊이 스며 들었다.
1절 갈릴리 바다에 일어났던 노한 풍랑과 겁에 질린 제자들의 아우성, 그러나 그 수라장 가운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는데 제자들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주님을 깨웠던 일들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해 놓았다.
후렴 아무리 못생겨 바보같고 훈련받지 못한 개라 해도 주인을 무는 개는 없다. 이와 같이 우주의 주인이요 창조자이신 그들의 주님이 누워 계시는 배를 아무리 노한 풍랑이라 해도 삼킬 수는 없다.
2절 베이커가 몸소 체험했던 쓰라린 경험을 그대로 쏟아놓았다. 그리스도 예수를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고난이 닥치자 사뭇 반항적이고 안절부절한 마음이 되었으나 다시 순종적인 마음으로 돌아와 주님을 사랑하여 말할 수 없는 평화를 체험하게 된 신앙의 순례기라고 할 수 있다.
3절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꾸중하셨다. 폭풍이 지나간 뒤 대지는 평온하다. 주님께서 마음의 폭풍을 잔잔케 하신 후 평온한 상태로 돌아간 작시자는 믿음이 없었던 것을 후회하고 주님께서 늘 함께 계셔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피아노와 같은 고급 안기나 가구에 광택을 내려면 고급 락카칠을 하고 마르면 샌드 페이퍼로 갈고 또 락카칠을 하고 샌드페이퍼로 가는 과정을 수없이 여러번 되풀이한다. 우리는 신앙의 연단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감동적인 은혜의 락카를 칠하여 이제 마르만 하면 시험이나 환난의 샌드 페이퍼로 문지르는 과정이 온다. 그런가 하면 또다시 은혜의 락카칠을 하여 마를만 하면 또다시 시험이나 환난의 샌드 페이퍼가 기다렸다는 듯이 연마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수 없이 격는 동안 우리의 신앙은 매우 차원 높은 신앙이 된다. 이 찬송의 작시자 베이커 양은 가난과 동생의 죽음의 시련의 샌드 페이이퍼로 그의 신앙의 푠면을 문지를 때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한다고 비명을 지르며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기까지 하였으나 수종의 딸의 자세가 되었을 때 이토록 위대한 찬송시를 쓸 수 있는 영감을 받게 된 것이다.
작지자 베이커는 1831년 9월 16일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언니와 남동생 하나와 시카고에서 살았다. 그녀가 성년기에 들었을 때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동생이 부모들의 생명을 앗아간 결핵병에 걸렸다. 끼니를 걱정하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언니와 힘을 모아 비용을 만들어 따뜻한 남쪽에 가서 요양하도록 하였으나 장장 2주 동안 긴박한 사영의 전보만 오고가다가 동생은 끝내 운명했다는 비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듣고도 여비가 없어서 시체를 가져올 수도, 장례를 치룰수도 없는 딱한 형편에 처하게 된 것이다. 더우기 그녀 자신도 병석에 누워있었으니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른 것이다.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소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자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가혹한 일을 하신다고 사뭇 반항적이었다. 그러나 수주가 지나 하나님은 친히 그 폭풍을 잔잔케 하셨다. 베이커는 "주님의 음성은 성화되지 못한 심정을 잔잔케 하셨고 좀더 깊은 신앙과 좀더 완전한 의지로 이끄셨다"고 고백하며 순종적이고 사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태도를 바꾸었다. 그녀는 주일 학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여성 절제단의 열렬한 일꾼이 되었고 90세의 장수를 했지만 그의 마지막 생애의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