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파머(Ray Palmer, 1808~1887)박사가 예일 대학을 갓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여학교에서 가르치며 신학교 공부를 시작한 1830년 22세 때 작시한 그의 처녀작이요 그의 유명한 대표작이다. 작곡자 메이슨 박사가 그에게 "파머씨, 당신은 아직 젊으니 오래 사시며 선한 일을 많이 하시겠지만 후세 사람들에게는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 어린 양`의 작시자로 가장 잘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 대로 파머 박사는 그 어떤 찬송시나 저명한 교회 목사로서보다 이 찬송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고 있다. 파머 박사는 이 찬송시의 내용들이 자신의 영혼의 소산이라고 말하며 거의 아무 노력없이 느낀 것을 그대로 절로 형성하였고, 매우 부드러운 심정으로 그 찬송시를 시작하였으나 눈물로 끝맺었다"라고 회상하였다.
1절 우리가 주를 믿는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주님은 우리를 분명히 주님의 것으로 만들 것이며 우리는 그와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되리라.
2절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순수하고 뜨거우며 불변의 사랑을 주께 드리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3절 어둠 속에 사는 우리는 진리의 영이요 인도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만 따라가면 된다. 인도자이신 그리스도보다 결코 앞서 가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빛을 향해 걸을 때는 그림자가 우리 뒤로 옴으로 어둠이 우리 앞에 드리우지 않으나 우리가 빛보다 앞서 가 빛을 등지고 걸으면 우리 앞에 어둠이 드리워 근심과 눈물이 있게 마련이요 그 어둠으로 인해 방황하게 된다.
4절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건너야 하는 차갑게 굽이쳐 흐르는 요단강을 건널 때 그 죽음의 공포와 의심 등이 다 주님의 사랑으로 없어지며, 제물이 되신 어린양의 희생으로 구속되었으니 큰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시자 파머 박사는 1808년 11월 12일 미국 로드 아일랜드의 리틀 캠프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학소년으로 인생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교회목사 세리노 드와이트 박사의 지도로 교회생활을 통하여 풍성한 영의 양식을 받아 깊은 신앙의 체험으로 목사가 되기로 결심, 신학공부를 하며 뉴욕의 여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1835년 목사가 되었다. 그는 여러 곳에서 회중교회 목사로 목회를 한 후 1887년 3월 29일 생애를 마쳤다. 현재 사용중인 것으로 그가 작시한 찬송시는 약 40여편이며 여러 권의 저서와 시집 등이 있다. 그가 마지막 눈을 감을 때 그가 작시한 "예수여, 주의 빛난 얼굴 처음 뵈오니"의 마지막 절을 나약한 목소리로 몇번이고 되풀이하며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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