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순교자

  조회수 : 355    / 등록일 :    / 출처(저자) : KCM모음




오늘은 이 민족이 잊을 수 없는 8.15 광복절이다. 민족의 슬픔과
함께한 많은 애국자의 정신을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
을 결코 헛되게 해서는 않될 것이다. 그것은 또 한번의 죄를 짖는
것이다.

손양원(孫良源) 목사는 여수 애양원 나병환자들의 교회에서 일생
목회한 참 목사이다. 경남 함안 출생이며 아버를 따라 6세때 부터
교회에 다녔고,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홀리네스파 노방전도에
큰 감동으로 교역에 뜻을 두게되었다.

여수 반란사건 때, 순천사범학교 다니던 사랑하는 두 아들 동인
동신이가 좌익계 학생의 총탄에 맞아 죽어, 그 무덤을 애양원 앞
동도에 나란히 묻고 언제나 두 아들을 내려다 보며 "내 아들 동인
동신이 동도에 묻혔다"면서 자신도 순교의 정신을 다듬어 갔다.
여수 반란 때, 분위기 휩싸여 실수를 저지른 학생은 사형을 당할
처지였는데, 손양원 목사는 그를 구명하여 자기 아들을 삼아 돌봐 주었다.

여자같이 착한 손 목사는 남성적인 부인 때문에 무척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검거되어
광주와 청주 감옥에서 6년 동안이나 갇혀 있을 때, 일본인 간수도
손 목사의 언행에는 감동되어 그를 성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감옥 속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혼자서 찬송 부르기도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고, 주일 날이면 절대로 일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번 간수
들에게 끌려가서 감식형을 받았다.

몸이 극도로 쇠약하고 더구나 독감에 걸려 사선을 방황할 때 손목사는
시를 지으며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독수 공방에 고독한 느낌이나,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네 식구로다.
갖가지 고난이 모조리 쓰러울지라도 고통 속에서 진리를 다 체득하도다."

손 목사는 본성이 인자하여 불쌍한 이들과 고락을 함께한 분으로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애양원 교회에서 시무하다 순교했다.
손 목사는 평소에 늘 말하기를 "내가 죽을 때와 장소는 강단 위에서 설교
하다가 죽거나, 길가에서 전도하다가 죽거나, 혹은 고요한 곳에서 기도하다
죽을지언정, 약사발을 안고 앓다가 죽을까 두렵다"하였다.

6.25난리가 일어나 인민군들이 여수, 순천 지방에도 밀어 닥치니 손 ?목사는
자기 목회하는 애양원 나환자 양떼를 버리고 혼자 피난갈 수 없다고 순교의
각오를 세웠다. 양아들 삼았던 안군이 피난 떠날 배까지 준비하여 해변가에
대기하고 떠나자고 강권하며 멀리 아니라도 바다 맞은편 섬에만 가도 ?산다고
권유해도 기어이 안 듣고 있다가, 애양원 나환자들이 좌우익 두 갈래로 ?갈려
손 목사를 고발하는 나환자가 있어 잡혀갔다.
1950년 9월 28일 여수 미평 둔덕재에서 조상학목사 등과 함께 순교했는데
손 목사의 입술은 인민군 총개머리판에 맞아 깨져 있었다.

(눅 16: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고전 4: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계 2: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