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웃음의 철학
주제 : 웃음 여유
내 직장으로 가는 길가에는 개나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융동의 개나리 나무들 가운데는 기이하게도 노란 꽃을 달고 있는
놈이 있다. 잠시 따뜻한 기온 때문에 철을 잊은 것일까, 이상 기온
탓에 어느날 느닷없이 그렇게 꽃봉오리를 내밀고 터트린 것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 꽃들은 나에게 웃음을 물게 한다. 겨울 한복
판에 얼굴을 내놓고는, `어, 이거 이상한데 다른 꽃들은 하나도 없
잖아'하며 저으기 당황하는 그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마치 어린날, 개구쟁이 친구가 일요일인 줄 깜박 잊고 등교를 해서
두고두고 우리에게 즐거운 화제를 만들어 주던 일에나 견줄 수 있
을까.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 어찌 개나리 나무 울타리 속에 숨듯
이 핀 저 철모르는 꽃뿐이겠는가. 대체로 기지가 넘치는 명민한 사
람들이 우리들을 웃게 만든다. 유머리스트로서의 링컨이나 월남 이
상재는 한 시대 모두를 웃겼다. 휑뎅그레한 거리에서나 복잡한 지
하철 역에서도 기지많은 친구들은 옆사랍을 웃긴다. 무잡한 사람살
이에서 이 경쾌한 웃음 소리는 얼마만한 위안거리인지. 일찍이 라
블레는 웃지 않는 자를 `아겔리스트'라고 불렀다. 이들은 언제나 자
신의 신념에 대한 맹목적인 정열만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에 대해서
는 증오와 분란만을 초래했다. 흔히 광신자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
은 세상을 피곤하고 권태롭게 만든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 웃음을 모르는 자는 한결같이 독재권력의 독재자들이었다. 히틀
러가 그러했고 프랑코 역시 그러했다. 이들은 자기 국민들에게 가
짜 권위와 엄숙 일변도의 얼굴만을 보여 주었다. 임어당은 어느 글
에선가 카이젤 수염으로 유명한 독일의 빌헬름 황제는 웃을 줄 몰
라서 자신의 제국을 잃었다고 환담했다.
웃음은 기존의 권위나 관습을 깨고 우리의 정신을 해방시켜준
웃음은 가짜 권위와 엄숙의 뒤에 숨은 허구를 무슨 내막처럼 여지
없이 폭로한다. 웃음은 정상과 그로부터 벗어난 일탈이 엉뚱하게
대조될 때 터져나오는 것.
요즈음 TV 화면의 코미디에서부터 과거 고전주의 회극에 이르기까
지 웃음의 원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신년 새해부터 우리에게는 웃음만 가득 넘쳤으면 싶다. 가정과
직장, 나라안 어느 곳이든지 화락한 웃음 소리들로 가득 넘켰으면
싶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얼마나 가볍고 우리의 정신은 얼마나
큰 해방을 맛보겠는가.
옛부터 우리는 잘 웃는 사람을 싱겁다고 깎아내려온 것이 사실이지
만 작금처럼 권위와 엄숙함이 만병통치약(?) 이 되는 시절에는 잘
웃는 이가 현명한 사람이 된다. 아니, 삶의 여유를 아는 사람이다.
내 직장으로 가는 길가에도 어리둥절한 꽃들이 쫌더 많이 피기
를 혼자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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