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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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완성의 삼국통일
주제: 삼국통일, 외세,분열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8년만에 고구려도 멸
망시켰다. 수,당의 수십 만 군사 앞에서도 의연히 맞섰던 고구려였
지만 연개소문이 죽은 뒤 아들들간에 권력다툼이 일어나 지배층에
분열이 생기자 고구려는 삽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고구려에 대한 공격은 당나라의 소정방이 661년 4월, 군사 4만
5천을 이끌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성을 포위하므로 시작되
었다. 소정방은 백제의 사비성을 함락한 지 1년도 채 안되어 고구려
정벌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아직 건재했다. 전세가 불
리해지자 당군은 이듬해 폭설을 이유로 철수했다.
그런데 그 무렵 24년간 집권해온 연개소문이 병으로 사망하자
세 아들의 권력다툼이 시작되었다. 맏아들 남생이 지방순시를 나간
틈을 타 둘째 남진이 형의 아둘 헌층을 죽이고 대막리지 자리에 올
랐다. 그러자 남생은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투항할 뜻을 전하
였다.
이렇게 되자 고구려를 침공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당은 즉시 헌
성을 길집이로 삼아 고구려를 공격해 들어갔다. 연개소문이 죽은
지 한 달만인 668년 6월의 일이었다. 80세의 노장 이세적이 이끄는
당군은 안시성을 함락시키고 요동지방을 손에 넣었다. 이 때 신라
군도 황해도 수안까지 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이번에
도 가까스로 당군을 막아냈다.
일단 물러갔던 당군은 668년 1월 부여성을 비롯한 40여개 성을
함락시킨 다음 압록강을 거쳐 평양성으로 향했다. 문무왕이 직접
이끄는 신라군도 평양성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다급해진 고구려
의 보장왕은 화평을 교섭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신라 기병
500명을 선봉으로 하여 밀어닥친 나당연합군은 평양성에 불을 질렀
다.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평양성이 적의 말발굽 아래 여지없이 짓
밟혔다. 668년 9월이었다.
당군은 보장왕과 왕자 등 고구려인 3만 8천호 약 20만 명을 포로
로 삼아 귀국했다. 백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숫자였다. 당으로 끌려
간 고구려인들은 지금의 회하, 양자강 하류와 증류, 서안 방면 등에
강제 이주되었다.
이외에도 말갈, 돌궐, 신라, 일본 등지로도 많은 사람들이 망명했
으나 대부분의 고구려인들은 그대로 머물러 저항운동을 계속했다.
대형 검모잠이 주축이 되어 왕족 안승을 추대하고 군사를 모아 당
군과 대결하였다 그러나 안승이 검모잠을 죽여버리므로 이 부흥운
동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외
세를 끌어들여 완성된 삼국통일은 상처뿐이었고 국토도 원산만에서
대동강에 이르는 미완성의 통일에 그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