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국인 최초 개신교 세례교인
본문 : 행22:16롬6:4대하31:5호9:10
한국인으로 최초 개신교 세례교인이 나온 해는 1879년이다. 그해에
만주에서 백홍준.이응찬과 그들 외 두명이 세례를 받았다.
이들에게 세례를 베푼 성직자는 당시 만주에서 활약하고 있던 스코틀랜
드 연합장로교회 소속 선교사 매킨타이어였다. 매킨타이어와처남 매부
간이기도 한 로스는 1872년에 만주 선교사로 도착했는데 영구에 근거를
두고 우선 만주의 중국인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벌이다가 1874년에 한.
중 국경 검문소와 교역 장소가 있던 고려문을 방문하면서 처음으로 한국
상인들을 만났고 한국인 선교에 뜻을세웠다. 다시 2년후인 1876년에는
봉천으로 선교 거점을 옮겼고,고려문을 재차 방문하였는데 이 때 의주
상인 이응찬(이응찬)을 한국어 어학 선생 겸 성경번역 조역자로 얻게 되
었다. 이 때부터 로스는 이응찬과 그 후에 만난 다른 한국인들의 도움
을 받아가며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79년 5월
에 로스가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에 돌아갈 때에는 이미 신약 중에 4
복음서와사도행전, 로마서의 한글역 원고를 휴대할 수 있었다. 로스는
본국교회와 교인들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 한글 인쇄시설을 마련해 1881
년에 만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험적으로 '한글로 된 첫 개신교 문서'
인 <예수성교문답>과 <예수성교요령>을 1881년 10월에 인쇄했고, 성경으
로는 1882년 3월에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 5월에 <예수성교 요안내복
음전서>를 각각 인쇄했다.
이처럼 로스가 1차 번역 원고를 갖고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에돌아
가 있던 기간 중에는 매킨타이어가 번역 일을 맡아 했다. 바로그 때 성
경번역에 참여했던 인물들 중에 용기를 내어 세례를 받겠다고 의사를 표
시한 인물들이 생겨났다. 본국에 있다가 매킨타이어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로스는 이들 네 명을 "장차 거두어들일 풍성한 수확의 첫 열매들
(first fruits)"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로스가 예견한 대로 한
국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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